우리나라엔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과 같은 유명한 건축물도, 미국의 나이아가라 폭포와 같은 웅장한 관광자원도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곳곳이 자연생태계가 살아숨쉬는 녹색관광지니 부러울 것도 없다.

정말이냐고? 모르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단 한번 경험해 보자!

지난 19일부터 22일까지 삼성동 코엑스 대서양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열린 ‘내나라 여행 박람회’는 한 마디로 한반도 곳곳에 숨겨진 ‘녹색관광’보물상자를 열어놓은 듯한 자리였다.

자기 고장 홍보하러 모인 지방자치단체와 여행업체 280여 개를 한 곳에 모아놓고 보니 산새 소리에 바닷가 냄새까지, 대한민국 자연이 그 안에 고스란히 있었다.

6회째 이어져 오고 있는 ‘내나라 여행 박람회’의 올해 주제는 ‘녹색관광’. 생태환경을 낀 여행코스에 대한 관심 때문에 박람회에는 19일부터 4일 동안 9만 7300여 명의 사람들이 찾아와 왁자지껄한 이야기와 웃음을 만들었다.

“녹색 관광에 우리 순천시가 빠지면 서운하죠.”
순천만 자연해설가로 활동 중인 황선미 씨(37)는 ‘내나라 여행 박람회(박람회)’에서 침이 마르도록 전남 순천시를 자랑했다. 막히지도 않고 순천만을 묘사하는 황 씨 설명에 사람들은 이미 순천만에 도착해 있는 표정이다.

황 씨는 “순천만은 우리나라에서 흑두루미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며 “을숙도 예전 모습이 그리워 경남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많다”고 순천만에 대해 설명했다.

일본, 필리핀 출신 봉사자들은 다른 부스에서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했던 외국인들에게 순천만과 우리나라 자연환경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순천시 자원봉사자들은 자기네 고장 자랑에 낯간지러운 줄도 몰랐다. 녹색환경 여행 프로그램 자랑하라고 모아놓은 자리니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다.

자연환경 재현하려 제주도에서는 화산석 송이까지 공수

20일 오후, 박람회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던 관람객들은 “이제 조금 쉬었다 가자”며 공원 벤치에 앉았다. 실내에 웬 공원? 한 지자체가 녹색관광으로 주목받는 자연환경 코스를 그대로 재현해 둔 것이다. 망원경으로 아무나 볼 수 없는 DMZ 구역을 넘볼 수도 있었다.

특히 제주특별자치도는 특별법상 외부로 반출되지 못하도록 한 제주도 화산석 송이를 공수해 제주 ‘올레’를 그대로 재현했다. 올레는 제주 말로 ‘큰 거리에서 대문까지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데, 제주도는 지난 2007년부터 올레를 따라 다니며 제주 토속 환경을 접할 수 있는 관광코스를 운영 중이다.

 

한 모자가 생태관광 즐기기 주제관에서 망원경으로 DMZ에 살고 있는 생물을 관찰하고 있다.<사진=문화체육관광부 대변인실 전소향>

한 자리에서 자연환경도 엿보고, 산해진미도 맛보고

참가자들이 녹색관광 설명만 듣고 가면 밍숭맹숭한 게 재미가 없었을 터. 각 지자체에서 백 마디 설명대신 내로라하는 특산물과 특산품을 차려놓았다. 각 지방에서 유명 음식들이 한 곳에 모이니 그것만 둘러보고 먹어봐도 이미 산해진미를 경험한 셈이다.

난생 처음으로 떡 메를 쳐본 외국인들은 찰진 떡에 노란 콩고물이 입혀지니 감탄사를 연발했다. 아저씨들은 경기 포천시 부스에 길게 줄을 서 이동막걸리 한 잔을 걸쭉하게 걸쳤다. 그리고 옆에 부스로 몸을 돌려 충남에서 바로 실어 온 굴을 초장에 찍어 안주로 먹었다.

특산물을 나눠주는 경품 행사에 아주머니들은 길게 늘어선 줄도 마다하지 않았다. 베테랑 주부인 김희순(58) 씨는 곰치잎을 얻은 뒤 “여행 정보도 알게 되고 생활에 보탬에 되는 특산물도 얻어 좋다”면서 “그냥 다니지만 말고 나처럼 선물도 좀 챙리라”며 남편을 나무라기도 했다.

한 쪽에선 어린 아이들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충남 홍성에서 모셔온 청정 새끼 돼지 때문이다. 아이들은 “돼지가 나를 자꾸 따라와요”, “돼지 꼬리가 동그랗게 말려있을 줄 알았는데 일(一)자”라며 신기해했고, 돼지와 온 종일 대화를 나눴다. 나비 축제로 유명한 전남 함평군은 나비는 물론 그 귀하다는 장수풍뎅이, 사슴벌레까지 유리관에 넣어뒀다. 손가락 두 개를 합친 크기의 누런 ‘장수풍뎅이 애벌레’를 보고 아이들은 “애벌레가 멋있다”거나 “애벌레가 징그럽다”고 다투면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온 고성희(37) 씨는 “봄방학이라 아이들과 어디로 갈까 고민했었다”며 “박람회에 오니 직접 먼 곳까지 가지 않더라도 아이들과 체험할 수 있는 게 많다”고 말했다.

 

박람회에서는 각 지역 특색을 살린 체험코너가 마련됐다. 경북 경주 부스에서 신라시대 왕관 만들기를 체험하고 있는 어린이들.<사진=문화체육관광부 대변인실 전소향>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노력이 녹색관광의 첫 걸음”

폐장시간이 다가오자 관람객들이 아쉬움을 뒤로 한채 하나둘 행사장을 빠져나기기 시작했다. 경북 관광마케팅사업부 이상학 씨는 녹색관광에 대해 “녹색관광, 뭐 특별한 거 있나요? 지역으로 찾아가 산도 보고 바다도 보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자연 속에 있는 거, 그게 생태관광이죠”라며 이번 행사에 만족감을 표했다.

이씨 말대로라면, 박람회를 찾은 이들은 이날 하루, 아주 알차게 녹색관광을 즐기고 돌아간 셈이다.

올해는 동해에 가서 신재생에너지 현장도 보고 먹을거리도 찾는 ‘녹색’ 여행을 가겠다는 노부부도, 외국인용 브로셔가 없어 이해는 못했지만 템플스테이를 하며 산 속에서 살아보겠다는 외국인들도, 봄 방학 숙제를 여기서 다 끝냈다는 초등학생들도 모두 다음해 박람회를 벌써부터 기다리는 눈치였다.

순천만 자연환경 해설가 황선미 씨는 “녹색관광에 대한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이 곳곳에 숨어 있는 생태도시가 주목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이번 박람회가 관광지에 무조건 많은 숫자의 사람을 유치하려는 지자체 이벤트보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는 고민으로 이어지길 바래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