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세계의 신성장동력은 ‘에너지 기술(ET)’이 될 것이고, 이 분야에서 한국은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유가가 고공행진을 멈추고 전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닥쳐왔지만 친환경 신에너지 개발사업에 대한 투자는 확대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2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공동 주최로 열린 ‘글로벌 코리아 2009’ 국제학술회의에서 국내외 주요 석학과 국제기구 관계자들은 미래 국가경쟁력이 ‘녹색혁명’ 성패에 달려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는 3세션 주제발표 ‘기후변화 대응과 녹색성장’에서 “풍부하고 저렴하며 깨끗한 에너지 기술(ET)을 개발한 나라가 대국이 되고, ET를 지배하는 국가가 안보와 경제 성장에서 가장 앞서나가게 될 것”이라며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이미 ET 지배와 녹색성장 달성을 위해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 “우수인력·제조업·IT기술 탄탄한 한국, 녹색혁명에 유리”

프리드먼은 특히 “한국은 우수한 인적 자원과 산업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ET 혁명을 주도하기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T 혁명은 기존 제조업 기술과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데 한국은 양쪽 부문에서 두루 강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한국이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를 갖고 있지 않은 점도 ET 혁명에 적극 나서도록 하는 유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리드먼은 ‘그린(green)’이 생태, 환경주의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에너지 문제는 규제로 풀어낼 것이 아니라 엔지니어의 신기술 개발로 이뤄내야 하며 수많은 투자와 실험 속에 확보된 새로운 에너지 기술은 차세대 유망 사업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미 싼 값에 전등을 사용하고 있는데 비싼 태양광 전등을 사라고 하면 안 팔리는 것처럼 새 기술이 있어도 구매자를 움직일만한 ‘가격신호(price signal)’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프리드먼은 현재 지구촌 사회가 지구온난화와 세계화 확산에 따른 중산층인구의 전 세계적 확산, 에너지 부족사태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다면서 이를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지구’로 표현했다.

프리드먼은 특히 “2008년은 이 세계에 경고성 심장마비가 발생한 해”라며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과거에 추구했던 방법으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한 해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프리드먼은 △기후변화 △에너지 빈곤 △생물다양성 감소 △자원수요 증가 △독재 산유국의 영향력 증대 등을 인류가 직면한 ‘5가지 도전’으로 제시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청정에너지 보급과 에너지 효율성 제고 등을 통한 ‘녹색혁명’ 뿐이라고 강조했다.

프리드먼은 “이 같은 문제들은 심각한 위기로 보이지만 대단한 기회이기도 하다”며 “풍부하면서 저렴하고 깨끗한 에너지원을 찾아낸다면 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 노부오 IEA 사무총장 “에너지 관련 설비투자 미뤄선 안 돼”

노부오 다나카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한국 정부가 앞장서 ‘녹색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노부오 총장은 ‘국제에너지 협력과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이라는 주제발표에서 “현재의 경제위기는 지속가능한 성장과 에너지 공급능력 확충의 계기가 될 것”이라며 “경기침체를 이유로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미뤄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2030년이 되면 2006년보다 세계 주요 에너지 수요가 45% 증가할 것인데 이에 부합하려면 26조 달러 정도가 꾸준히 에너지 관련 설비투자에 집중돼야 한다”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장기적 시각에서 산유국과 비산유국, 선진국과 개도국 등 국제적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노부오 총장은 이어 “현재의 석유 수급구조상 고유가 문제는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으며 탄소거래권이 정착되면 유가가 더 상승할 수밖에 없다”면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뿐만 아니라 비회원국의 협조 속에 에너지 문제에 대한 대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김영학 차관 “그린에너지 사업 투자 확대돼야”

3세션 토론자로 나온 김영학 지식경제부 2차관은 “금융위기와 저유가가 도래하면서 녹색성장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며 “유가가 앞으로 다시 치솟을 수 있다는 불확실성 속에서 현명하게 녹색성장에 필요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차관은 “한국은 에너지 소비량의 97%를 수입 에너지로 쓰고 있고 화석에너지의 비중이 83%에 이른다”면서 “우리 정부는 교통 및 건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녹색 뉴딜정책’을 표방해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서는 각국이 협력하며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 뒤 “한국이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교량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첫 번째 토론자였던 제롬 글렌 유엔미래포럼 회장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으로 글로벌 기후변화공동정보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코리아 2009’ 국제학술회의는 청와대 미래기획위원회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이명박 정부 출범 1년을 계기로 글로벌 경제위기, 기후변화 등 재편되는 국제질서 속에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개최했다.

회의는 기조세션 외에 △국제금융 △국제무역 △기후변화와 녹색성장 △외교안보 등 4개 개별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됐으며, 로버트 루빈 전 미 재무장관, 파스칼 라미 WTO 사무총장, 토마스 프리드먼 NYT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 등 국내외 저명한 석학 30여 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