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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길

이명박은 누구인가?

이명박은 1941년 12월19일 가난한 목장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부모님을 도와
생활 전선에 나섰으며, 김밥과 풀빵, 뻥튀기, 과일, 생선, 옷감
등을 팔며 고학으로 포항 동지상고 야간부를 졸업했다.
그는 이 시기를 “굴 껍데기처럼 우리 대가족에게 들러 붙은 가난은 내가 스무 살이 넘어서도 떨어질 줄을 몰랐다” 고 회상한다.

부모님은 이태원 판자촌에 단칸방을 얻어놓고 시장에서 노점을 했다.
단칸방은 부모님과 동생이 누워 다리조차 펼 수 없을 정도였기에 달동네 합숙소에서 일당 노동자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매일 새벽 일자리를 찾아 달동네 산꼭대기를 허겁지겁 달려야 했던 시절, 그의 발길은 동숭동이나 안암동, 신촌 같은 대학가로 향했다. 생존만이 유일한 과제였던 그 때 “ 대학시험이라도 한번 쳐보자. 시험에 합격하면 학교에 못 다니더라도 중퇴가 된다”는 엉뚱한 생각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청계천 헌책방에서 책을 얻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불 좀 끄라는 노동자들의 원성을 사면서 공부한 끝에 61년 고려대 상과대학에 합격했다.
어머니가 행상을 하던 이태원 재래시장에서 환경미화원을 하며 대학을 다니던 그는 상과대학 학생회장 시절 ‘한ㆍ일 국교 정상화’를 반대하는 6ㆍ3민주화 운동을 주도하여 반년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석방되었다.

대학 졸업 후 운동권 학생이라는 이유로 취직을 할 수 없게 되자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고, 청와대와 담판 끝에 1965년 현대건설에 입사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국영기업체나 해외유학으로 회유하려던 정부를 향해 “한 젊은이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데, 국가가 그 길을 막는다면 국가는 젊은이에게 영원한 빚을 지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던 것이나, 현대건설 면접에서 “건설이 뭐라고 생각하나?” 라고 묻는 정주영 회장의 질문에 “ 건설은 창조입니다” 라고 대답했던 일화는 지금도 여러 사람들을 통해 회자되고 있다.

그는 현대건설에 입사한 지 5년 만에 이사, 12년만인 1977년에 만35세의 나이로 현대건설의 최고경영자(CEO) 에 오르며 ‘샐러리맨의 신화’가 됐다.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 중국의 장쩌민 주석, 옛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 등과 교류하며 한국의 대표적인 CEO로서 국제적인 감각을 폭 넓게 익혔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말레이시아 페낭대교 연륙교를 건설하고, 이라크 화력발전소를 짓는 등 열사의 나라에서부터 동토의 시베리아까지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 경영자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태국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현장 폭도로부터 끝까지 금고를 지켰던 사건이나 살벌했던 국보위를 상대로 현대자동차를 지켜냈던 일은 위기 때 더욱 강해지는 그의 집념과 투지, 그리고 도전정신을 잘 보여준다.

나는 ‘희망’으로 단련 된다.

1992년 1992년 이명박은 27년간의 현대그룹 생활을 마치고 14대 총선에서 민자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4년 뒤 15대 총선에서는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에서 4선인 이종찬 후보와 청문회스타인 노무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2002년 7월부터 4년간 민선3기 서울시장으로서 일하며 기업에서 배운 경영마인드를 공공행정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했던 ‘청계천 복원사업’과 ‘대중교통체계 개편’을 차질 없이 성공시켰고 최초로 공공정책을 세계로 수출하는 성과도 거뒀다. 도심을 걷기 편한 산책로로 만들고 차로 가득했던 서울광장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줬다.
대규모 개발이 계획돼 있던 뚝섬 1,256,204m²를 서울숲으로 만들었으며, 해마다 서울시 예산을 8천억씩 아껴 서울시 재정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지하철 건설부채를 반으로 줄였다. 전자정부로서의 서울시는 뉴욕, 도쿄 등 세계적인 대도시를 제치고 2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행정에 경영을 도입한 이른바 ‘이명박식 시정’은 ‘공무원도 춤추게 만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서울시를 역동적인 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

서울의 변화와 이명박의 리더십은 타임즈, 비즈니스위크, 파이낸셜타임즈 등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차와 시멘트로 가득했던 서울 도심에 생명의 물길을 연 청계천 복원사업은 삼성경제연구소가 선정한 올해의 히트상품으로 선정됐고,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최고시행자상을 받았다. 청계천은 이제 외국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서울의 명물이 되었다. 특히 타임지는 2007년 10월 이명박 후보를 ‘올해의 환경영웅’으로 선정, 서울시장으로서 그의 업적을 인정했다. 서울시장 시절의 업적을 바탕으로 이명박의 지지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이를 계기로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가 됐다.

서울 시장 퇴임 이후 그는 대한민국 성장 동력을 찾아 국내외 정책 탐사를 나서며 대선주자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유럽의 운하정책과 과학도시, 미국의 대도시 행정, 두바이의 도시혁명, 인도의 BT,IT 등을 1년여에 걸쳐 살펴보면서 대한민국의 미래지도를 그렸다. 또한 1백년을 먹고 살 첨단과학 육성을 위한 ‘국제과학기업도시’, ‘7% 성장-4만 달러 국민소득-세계 7대 강국’의 목표를 제시했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국가시스템을 재설계하기 위한 것으로 국민에게는 희망을, 대한민국에는 미래의 비전을 불어넣으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국민들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바라는 기대는 한마디로 ‘경제 살리기’이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시작한 국제금융위기가 실물경제에까지 영향을 주어 지금은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민들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위기를 극복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은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으며 모든 국민이 힘을 모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이 한반도에 국한된 변방국가에서 머물지 않고 세계 중심의 선진 일류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저탄소 녹색성장’의 비전을 제시했다.
샐러리맨 신화와 청계천의 기적을 만들어 낸 ‘이명박 리더십’은 실용주의에 기반을 둔 ‘강한 추진력’과 ‘실천 능력’ 이다. 이는 지독한 가난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얻어진 자수성가형 투지와 종업원 98명의 중소기업을 16만 8천명의 글로벌기업으로 성장시키면서 다듬어진 기업가 도전정신에서 비롯됐다. 또한 민선3기 서울시장으로서 1천만 서울시민의 살림을 책임진 경영 마인드와 공무원 사회에 경영행정의 효율을 불어넣은 합리적 리더십이 모두 융합되어서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국민들은 “국가에도 경영마인드가 절실한 시대에 대한민국의 도약을 위해서는 실물경제의 경험,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국제 감각, 희망과 비전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실천력이 필요하다”며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 모든 경쟁력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명박은 희망으로 단련되는 사람이다.
시련이 닥쳐올수록 도전하는 사람이다.
이명박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이명박이라면 대한민국을 새롭게 바꿔 세계 일류국가로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는 국민 앞에 알몸으로 다시 시작한다.
세계 일류국가 대한민국!
이명박은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꼭 해내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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