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기자마당(1483)

거장 백건우 연주자와 함께 한 아름다운 피아노 이야기
어린이기자마당 2011-12-01
건반 위의 순례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를 푸른누리 기자들이 인터뷰했습니다. 음악이라는 언어는 인간이 창조한 언어 중 가장 훌륭하다고 말하는 그의 음악 인생 이야기를 기사로 확인해보세요. -푸른누리편집진-
 


11월 27일 일요일 저녁, 7명의 푸른누리 기자들은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일신홀을 찾았다. 이번 동행 취재의 인터뷰 대상자는 바로 피아노의 거장 백건우 연주자였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높으신 분을 직접 만난다는 생각에서였는지 우리 7명의 기자들은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일신홀의 무대에 들어섰다. 피아노 연습에 여념이 없으신 선생님께서는 슈만 피아노 협주곡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미소로 우리에게 인사를 대신하셨다.

연습곡이 끝나자, 부드러운 음성으로 ‘다 온 것 맞나요?’라며 우리 기자들에게 친절하게 말을 건네주셔서 어색하던 분위기가 금세 자연스러워졌다. 우리 기자들은 평소에 백건우 연주자에게 궁금했던 점을 하나씩 질문하며 음악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1. 선생님께서 피아노를 처음 배우셨을 당시에는 ‘피아노’라는 악기가 대중적이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피아노를 공부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또 ‘음악’ 하면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를 떠올리는데 프랑스 파리에 가게 되신 이유도 말씀해주세요.

 

 

그 시절에는 피아노를 갖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6.25전쟁 직후였기 때문에 형편이 많이 어려웠죠. 그 때 어머니께서 마침 집에서 피아노 레슨을 하셨는데, 남들이 피아노를 치는 것을 보고 부러워서 피아노의 자리가 빌 때마다 혼자 피아노를 치곤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미국에서 음악 공부를 했는데,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등의 음악가들이 모두 유럽 출신이어서 유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간 이탈리아에서는 오페라 무대에서 보던 광경과 인물, 분위기를 길가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통해 곡들을 음악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죠.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여러 나라를 다녀보았지만 프랑스에 가게 된 계기는 이전부터 프랑스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해주셨던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고, 지리적으로 프랑스가 유럽의 중심지이기 때문입니다.

 


2. 백건우 선생님께서 세계를 무대로 후배들이 나아갈 수 있도록 지평을 열어주신 덕분에 얼마 전에는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손열음 연주자는 2위, 조성진 연주자는 3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이처럼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젊은 연주자들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선생님께서 처음 외국을 무대로 활동을 하셨을 때에는 지금과는 확연히 달랐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 시절 외국에서 한국인 음악가에 대한 생각이 어떠했는지, 한국인이라서 힘들었던 적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뉴욕에 공부하러 갔을 때만 해도 외국인들이 한국을 잘 몰랐습니다. 길가에서 사람들을 만나 어디서 왔는지 한번 맞춰보라고 했더니 일본, 중국, 베트남, 라오스 등의 여러 나라를 대는데, 한국이 빠져 있어서 너무 슬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사람입니다’ 라고 말을 하면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등의 한국어를 몇 마디씩 해주곤 합니다. 이를 통해 얼마나 세상이 변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지금과는 정반대되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외국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외로웠습니다.

 

 

 


3. 피아노를 연주할 때 노력과 재능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보통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을 하나요?
피아노는 누구나 치고 즐길 수 있는 악기입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대가가 되려면 타고난 음악성을 지니고 있어야 하고 연습도 많이 해야 합니다. 연습을 통해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면도 필요하지만, 하고 싶어서 하는 욕구가 더 강해야 합니다. 또한, 연습시간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저는 보통 6시간에서 7시간 정도 연습을 하는데, 여행을 갈 때는 스케줄이 안 되면 최대한 많이 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음악회의 경우 자기 자신이 생각하기에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4. 오랫동안 피아노 연습을 하려면 체력이 매우 중요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건강은 기본적으로 좋아야 합니다. 연습을 하는데 육체적으로 힘들기 때문입니다. 손만 움직이면서 피아노를 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감정을 실어서 연주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가 커집니다. 그리고 동시에 박자도 생각하고, 리듬도 생각하고, 화성도 생각하고, 여러 악기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과학적인 음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적, 감정적, 육체적인 에너지를 모두 소비하기 때문에 아주 건강해야 합니다.

 


5. 한 작곡가의 작품을 전곡으로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기사를 통해 접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전곡 연주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고집하는 것은 아니고, 곡을 겉핥기 식으로 다루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 곡을 깊이 이해하려면 일생을 작품에 바친 작곡가의 넓은 세계를 이해해야 하는데, 이를 더 넓게 이해하기 위해 작품을 다 한번씩 둘러보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피아노를 위한 곡은 다 보게 되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전곡 연주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6. 얼마 전 섬마을 콘서트를 했을 때 쇼팽, 드뷔시, 베토벤 등 다양한 곡을 연주하셨는데 보통 연주회에서 어떤 것을 기준으로 선곡하는지 궁금합니다.
선곡을 하는 기준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연주자가 곡을 선택하는 경우와 곡이 연주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죠. 곡이 연주자를 선택하는 경우를 예로 들면 여러분이 매일 당기는 음식이 다르듯이 음악도 ‘이런 것은 꼭 표현해내고 싶다’는 느낌이 몸으로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곡과 소통이 되고, 그것을 내 손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충동이 오면 그것으로 곡을 선정하는 것입니다. 연주자가 곡을 선택하는 경우는 ‘이 곡은 사람들이 좋아하겠다’라는 생각으로 선곡하는 경우입니다. 사실 이런 선곡은 별로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을 의식하고, 진실된 음악보다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보다는 정말 이 음악은 꼭 들려주고 싶다거나, 느끼고 싶은 음악을 선곡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7. 아무리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듣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가끔 긴 음악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선 항상 클래식 음악만 들으시나요? 요즈음 세계적으로 K-POP 열풍이 불고 있는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원더걸스와 같은 아이돌 음악은 안 들으시나요?
음악을 공부하면서 클래식만 듣는다면 저는 아마 속이 좁은 사람일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고 있는 음악은 다 들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클래식, 팝, 민속음악 등 많은 장르의 음악을 듣죠. 민속음악은 특히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속음악은 우리의 뿌리를 담고 있는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 나라에 여행을 다닐 때마다 그 나라의 민속음악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찾아서 듣습니다. 외국에서 큰 전광판에 나온 우리나라의 그룹을 본 적이 있는데, K-POP이 중국, 유럽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환영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8.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시려면 많이 떨릴 것 같습니다. 이런 떨림은 어떻게 극복하나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떨리기 마련입니다. 좋은 작품을 가지고 무대에 섰을 때는 그만큼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더욱 떨리죠. 하지만,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떨리게 되고, 이런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너무 떨려서 실력발휘를 못하게 되면 문제가 있지만, 어느 정도 떨리는 것은 오히려 좋은 연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극제가 됩니다. 준비가 덜 되었을 때는 더 떨리는데, 나이가 많아질수록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관객을 적이 아닌 친구라고 생각하게 되면 훨씬 마음이 편해집니다.

9. 협주곡을 연주할 때에는 피아노 파트만 알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평소에 협주곡 연습은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협주곡을 연주하려면 오케스트라의 모든 파트, 그리고 지휘자의 악보까지도 다 공부해야 합니다. 어느 악기가 언제 나오는지 알아야 피아노 연주를 오케스트라에 맞추어 할 수 있죠. 자신의 파트가 아니라고 해도, 자신의 파트와 똑같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10. 백건우 선생님처럼 대한민국을 전세계에 알리는 음악 외교관이 되기 위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어린이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전과 달리 대한민국은 많이 알려져 있고, 나라 자체도 강해졌기 때문에, 음악인으로서 성장할 가능성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개인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좋은 매니저, 레코드 회사, 프로모션이 필요하고, 좋은 사람들과도 인맥을 넓혀 나가야 하고, 운도 따라야 합니다. 또 나라의 뒷받침도 필요하죠. 이런 많은 조건이 맞아 떨어졌을 때, 성공이 가능합니다. 옛날에는 이렇게 연주자로서 성공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지만, 지금은 이런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충분히 성공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피아노의 대가는 역시 달랐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성숙함과 자상한 미소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만난다는 생각으로 긴장한 기자들을 편안하게 해주었고, 인터뷰를 통해 백건우라는 한 인물의 일생과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또한, 백건우 연주자의 아내이자 영화배우인 윤정희 선생님도 볼 수 있는 행운도 얻을 수 있었다.

 

12월 2일과 3일에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파리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공연이 있다고 한다. 6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백건우 연주자께서는 2년 동안의 공연계획이 짜여 있을 만큼 바쁜 일정을 보내고 계시다.

백건우 연주자께서는 음악을 하는 그에게 음악이라는 언어는 인간이 창조한 언어 중 가장 훌륭한 언어라고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 한국의 존재를 모르던 시절, 외국에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음악을 하여 피아노의 대가가 되신 백건우 연주자의 강한 의지력은 정말 본받을 만하다.

백건우 연주자의 말씀처럼 자신이 하는 일, 그리고 꿈꾸는 일을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또한, 앞으로 어떤 힘든 일이 찾아와도 견뎌낼 수 있는 의지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박재원 기자 (충암초등학교 /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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