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이야기(1483)
- 개목걸이가 대통령 선물???
- 청와대 이야기 200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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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목걸이가 대통령 선물???
대통령실 연설기록 비서관 정용화
여러분께서는 어떤 선물이 가장 기억에 남으십니까? ‘럭셔리’ 혹은 ‘명품’이라는 분도 없지는 않겠지만, 가장 좋은 선물은 애정과 정성이 함뿍 담긴 ‘맞춤형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선물은커녕 부부 또는 아내와 관련한 주요 기념일마저 제대로 챙기지 못해 ‘구박’받기 일쑤입니다만, 잘 고른 선물 하나가 백 마디 말보다 위력을 발휘할 때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국가 정상들간에는 어떤 선물들이 오갈까요? 정상들간의 선물 교환은 의례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매우 중요한 외교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선물 정치학’이란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작은 실수 하나가 국익에 매우 나쁜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정성어린 선물 하나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보탬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선물 고르기는 어쩌면 정상회담의 출발점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교부 담당 직원이 고심에 고심을 하여 선물을 선정하였다고 합니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은 보통 우리의 전통을 잘 드러내는 도자기나 자개함 같은 것을 많이 선물하셨습니다. 외국 정상들도 대개는 우리 대통령께 자기나라의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것들, 예를 들면 금ㆍ은제 그릇, 도자기, 장식용 칼, 전통문양의 액자 등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좀 다릅니다. 받는 분의 취향을 철저히 고려하여 세심하게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정상간의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선물을 잘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를 일부 소개하고자 합니다.
(1)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미국방문 때(2008년 4월)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개목걸이와 뼈다귀를 선물했습니다. 한미관계의 중요성으로 보나, 정권교체 후 첫 만남으로 보나 상당히 의외이자 결례가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개목걸이와 뼈다귀가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정상간 선물 교환은 보통 면담 전에 전달됩니다. 따라서 특별한 선물은 정상간의 대화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 부부는 다른 많은 애견인들처럼 애완견 바니를 가족처럼 아끼고 있었습니다. 미 대통령 별장인 캠프데이비드에서 영부인 로라 여사는 “이 대통령이 우리 바니에게 선물을 했어요. 고마워요”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대통령은 이에 “우리도 개를 키워봤는데”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대화의 물꼬가 ‘빵’하고 터졌답니다.
아무리 그래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미국 대통령에게 개목걸이와 뼈다귀를 선물하기엔 뭔가 어색하지 않을까요? 국가간이나 개인적으로 서로 불편한 관계였다면 “웬 개뼈다귀 같은 선물?”이라고 불쾌해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은 미국 방문 전 전직대통령인 아버지 부시 부부를 청와대에 초청했었습니다. 노부부를 전통한옥으로 지어진 관저로 모셨습니다. 손님들께서는 신발을 벗고 실내로 들어가는 것을 신기해하셨습니다. 대통령 내외께서는 손님들께 한옥의 살림살이를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네 분이 오찬을 함께 하셨습니다. 식사 중에는 한미관계 개선의 열의와 진정성, 인간적인 친밀감을 표현했습니다. 노부부가 나가실 때는 대통령께서 직접 옆구리를 부축하면서 신을 신는 것을 도와드렸습니다.
(이 블로그를 찾으시는 모든 슬기로운 독자들께서는 이미 눈치채셨을 것입니다. 옛날 중국 사신이 보내온 목단(모란) 병풍을 보고 “향기가 없는 꽃”이라고 알아맞힌 선덕여왕이 우리의 조상 아니겠습니까?)
아버지 부시께서는 이 모든 삽화를 아들 부시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한번 만난 적도 없지만 어느새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이었습니다. 이쯤되면 개목걸이 선물이 결례는커녕 받는 사람에게 얼마나 의미있는 선물이었는지(품목일지라)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대통령께서는 선물 품목은 물론 전달방식에도 관심을 기울입니다. 부시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오찬장인 상춘재에 ‘베일에 싸인 액자’ 하나가 벽에 걸려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베일을 벗겼습니다. 그림이 ‘짜잔’ 하고 나타났습니다. 크로포드 목장(부시 대통령의 고향인 텍사스에 있는 목장)을 배경으로 한 부시 대통령의 초상화였습니다. ‘깜짝 선물’ 이후 어떤 분위기가 연출되었을지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2) 2009년 10월 9일 일본의 하토야마 신임총리 부부께서 방한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총리께 칠보로 된 ‘목련’ 액자를 선물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목련의 꽃말은 ‘우애’입니다. 그러니까 대통령께서는 하토야마 총리가 주창한 ‘동아시아의 우애론’에 대한 관심을 이심전심으로 전달한 것입니다.
부인 미유키 여사께는 일본어로 번역된 책 『아름다운 한국음식 100선』과 백자 도자기를 선물했습니다. 미유키 여사가 한류의 열성팬이라는 데 착안한 것이었습니다. 김윤옥 여사께서는 미유키 여사와 함께 김치를 만들고 맨손으로 김치 한 조각을 미유키 여사께 먹여드리기도 했습니다.
(3) 마지막으로 2009년 10월 22일 캄보디아를 국빈 방문하셨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때 노르돔 시하모니 국왕께 국산 블루레이로 제작된 한국영화 걸작선과 플레이어를 선물했습니다. 시하모니 국왕이 영화를 좋아하고, 캄보디아 국민들이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즐긴다는 것에 착안한 것입니다. 더구나 최신 IT기술로 만든 제품에 담았습니다. 캄보디아 국왕께서는 한국영화를 즐기면서 어쩌면 한국의 IT기술에 더 감탄하고 계실지도 모를 일입니다.
(참고로,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공직자가 시가 100 달러 이상의 선물을 받을 경우 국고에 귀속해서 대통령기록관이 이를 관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해 역대 대통령께서 받으신 선물들은 대통령기록관에서 잘 관리하고 있으며, 일부는 청와대 관람자들을 위해 전시하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나라 남성분들은 흔히 ‘시간이 없어서’ 부인과 자녀를 크게 기쁘게 할 선물을 고르지 못한다고들 하십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반성하고 있습니다. 제게 부족했던 건 시간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제게 2%쯤 부족했던 것은 ( )이었습니다. 괄호를 채워주십시오. (선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