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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와 함께 찍은 사진이 가히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사진 1). 블랙 스커트에 화이트 재킷을 대비시키고 큰 벨트를 매치시킨 뒤 안에 짙은 진달래색의 톱을 입어 캐주얼하면서도 세련됨을 과시한 미셸 오바마 못지않게 김윤옥 여사는 진달래색과 너무 잘 어울리는 짙은 청색의 투피스 슈트를 선택했다. 특별한 스타일링이나 기교 없이 상·하의를 모두 같은 색으로 통일했지만 큼지막한 빅 버튼이 단정하면서도 장식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목선을 약간 깊게 파주어 그 안으로 살짝 비치는 진주 목걸이는 답답해 보일 수 있는 슈트의 엄격함에서 한숨 돌릴 수 있는 여백의 미를 보는 듯하다. 오히려 벽난로와 초상화, 벽에 달린 조명등 뒷배경만 없으면 미셸 오바마가 안주인이 아니라 거꾸로 청와대를 방문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한 장의 사진이 대한민국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존재감을 부각시켜줬다고 생각한다.
외국 순방 때 공항에 도착해 첫 번째로 진행하는 영접식은 그야말로 첫 맞선을 보는 것처럼 설레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2009년 이명박 대통령과 동반, 인도네시아를 순방했을 때 김 여사의 의상도 그런 경우다(사진 2). 평화의 상징인 한반도기의 하늘색을 연상시키는 이 대통령의 넥타이 색상에 맞춰 입은 같은 색상의 수트엔 김 여사의 세심한 배려가 배어 있다. 영접 나온 방문국 인사와 도열해 있는 군인들을 향해 레드 카펫 위를 힘차게 걸어야 하는 당당함과 어울리게 재킷 양쪽으로 배열된 금단추가 흡사 의장대의 예복 같기도 하며 허리선 위쪽으로 장식된 일자형의 포켓으로 날씬해 보이면서도 키가 커 보이는 효과를 냈다.
대체로 김 여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상은 밝은 파스텔톤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중년 여성들이 레드·옐로 등 강렬하고 선명한 원색을 선호하는 데 비해 김 여사는 살구색·핑크색·하늘색 같은 것들을 잘 소화해낸다. 2008년 2월 대통령 취임식 때 입었던 비취색이 감도는 한복같이 옅은 중간톤의 옷을 즐겨 입는데, 이런 파스텔톤은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사진 3 ). 이런 색상들은 김 여사의 피부톤과도 잘 어울린다. 동시에 한 듯, 안 한 듯한 메이크업과도 잘 어울려 나이를 잊은 듯한 소녀적인 감성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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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의 헤어 스타일은 이제 “영부인 스타일로 해주세요”라고 하면 대한민국의 미용실 어디에서도 통할 만큼 퍼스트레이디만의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단정하게 부풀린 앞머리를 그대로 넘겨 시원하게 이마를 드러내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느낌을 살리면서도 귀 뒤로 살짝 돌아 말아 올린 스타일이다. 때론 엄하지만 푸근한 한국적 어머니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청와대의 겨울 양식인 김장을 담그는 모습(사진 4)에서도 영부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독거노인을 위한 김장 담그기 행사를 지휘하는 자원봉사단장이나 동네 부녀회장 같은 소박한 모습이 우리네 어머니를 연상시키곤 한다.
액세서리의 착용도 소박하다 싶을 정도로 절제해 사용하고 있다.
항상 착용하는 귀고리 외에 네크라인이 깊게 파인 정장에 한 줄 또는 두 줄의 진주 목걸이를 한 것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액세서리는 자제하는 편이다(사진5). 한복을 입을 경우 맵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쌍가락지를 끼거나 옷과 같은 소재로 만든 조그마한 클러치 형태의 핸드백을 드는 게 전부인데 크고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하는 것에 비해 김 여사 자신의 이미지를 확실히 자리매김하는 데 오히려 큰 도움이 됐다. 한복의 경우 공식 행사 석상보다는 저녁만찬이나 파티가 있는 상황에 더 잘 어울리는 듯하다. 원래 동그란 어깨선과 잘 어울리는 한복의 선이 김 여사의 체형과 잘 맞는 편이다. 또 고전적인 한복의 디자인에서 벗어나 투피스 정장과 같은 느낌을 주는 흰색 바탕에 파스텔톤의 꽃무늬라든가, 옅은 개나리색의 한복에 은박을 화려하게 놓아 서양의 이브닝드레스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다.
김 여사는 역대 퍼스트레이디와 달리 의상을 담당하는 전담 코디네이터를 두지 않고 있다고 한다. 참석해야 하는 행사의 성격이나 만나는 사람들의 특성 등을 미리 파악한 후 적절하게 의상을 준비하는 쪽이다. 외국 순방이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땐 가끔 출가한 세 딸들과 상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수입 브랜드 옷보다는 군더더기가 없고 심플하면서도 단조로운 색상의 스타일의 기성복 브랜드를 선호하는 편이란 게 주위의 전언이다.
김 여사의 패션 속엔 이따금씩 60~70년대 패션을 주도했던 ‘재키 룩’의 요소가 엿보이기도 한다. 단순한 디자인에 7부 소매, 라운드 넥에 한 줄이나 두 줄로 코디한 진주 목걸이의 변형을 볼 수 있는데, 대학(이화여대) 시절을 보낸 60년대의 추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디테일 못지않게 김 여사의 퍼스트레이디 룩을 돋보이게 하는 건 사람들과의 어울림이다. 겨울올림픽 선수단을 맞아 같이 산책하는 모습이나 군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얼싸안는 모습(사진 6 )에는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반겨주는 친구의 어머니, 군대에 아들을 보낸 후 첫 면회에서 상봉한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대중은 퍼스트레이디에게 상반된 두 가지를 동시에 요구한다. 세련된 현대 여성의 이미지와 따뜻하고 푸근한 어머니의 모습이다. 하나 아무리 완벽한 조건을 다 갖춘 만 점짜리 드레스 코드라 할지라도 퍼스트레이디 패션이 국민에게 진정한 이미지로 남으려면 옷 이외의 그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건 다름 아닌 김 여사의 소탈한 함박웃음이지 않을까. 가장 멋진 패션은 옷이 아니라 그 옷을 입는 사람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