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에서 열린 통일교육원의 통일정책 최고위 과정에 참석, 통일 철학과 통일 과제를 주제로 특강을 했습니다.
▶ 다음은 특강 발언 내용 입니다.
고르바초프가 한국에서 자꾸 오니까 한번 만나게 됐다. 그때 지금도 잊지 않는 말이 있다. 그분이 30분간 만나기로 했었는데 50분가량 걸렸다. “우리 소련도 헝가리, 폴란드 등의 나라들하고 경제관계 맺고 지원하고 하면, 그 나라도 가난하고 우리도 가난하게 될 위험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관계를 끊어야 피차가 좋을 수도 있겠다”고 했다. 놀라운 변화다. 아마 그런 생각을 했으니 페레스트로이카를 하지 않았나 한다.
90년대 초 공산주의가 무너지는 역사의 흐름을 현장에서 봤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흐름이었다고 생각한다. 저항하는 사람이 내부에는 있었겠지만 그랬다.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자본주의가 우월한 시대가 되는 역사의 한 흐름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도 많은 나라를 다녔다. 아프리카의 나라들도 독재를 많이 했었다. 북아프리카가 많이 바뀌었지만 남아프리카도 민주주의로 많이 바뀌었다. DR콩고도 선거를 치러 대통령을 뽑고… 북아프리카에서 독재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이제 장기 독재 정권이 유지될 수 없는 역사적 시대를 맞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철옹성 같은 군대를, 충성스러운 군대만 장악하면 몇 십년, 백년 갈거라 생각한 것이 이집트다. 독재를 하려면 결국 믿는 것은 군대다. 아마 이집트도 세상이 바뀔 거라 상상을 안 했을 것이다. 모든 군대가 충성을 하니 몇 십년 대를 이을 거라 생각했지 않겠나 하는데 이게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 정보화시대라는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국민과 국민 사이 소통이 시작되면서 감당하지 못하게….
그 바람이 아프리카를 지나 시리아에서 잠시 바람이 멈추었지만 거역할 수 없다고 본다. 역사의 흐름이기 때문에 그렇다. 아무리 개인이 강해도 세계사적 흐름은 막을 수 없다. 이 바람이 아시아까지 와서 미얀마까지 와 있다 생각한다. 미얀마도 문을 닫고 정말 독재를 오래하다 보니 유일하게 친할 수 있는 나라는 북한밖에 없었다. 서구국가가 다 봉쇄했으니 북한에서 무기를 수입하고 교류했었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제주에서 할 때 지금 대통령이 총리일 때 와서 내가 한마디했다. 민주화를 하지 않고는 절대 미얀마가 경제발전을… 그 당시 경협하자고 여러 이야기했어도 “그런 상황에서는 협력할 수 없다. 그러니 총리가 당신 나라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국도 경협할 수 있다”고 했다. 조금 불쾌하게 서먹서먹하게 갔지만.
한국은 이제 경협도 중요하지만 민주화 이야기를 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인권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할 의무와 수준에 와 있다. 돈이나 벌면 된다는 수준은 벗어나고 있다. 국격이 높아졌고 주도적 위치에서 국제회의를 주도하고 세계의 중요한 문제를 상의할 정도의 수준에 와 있다. 국민은 잘 모르지만 세계는 인정하고 있는 거다.
지난번 발리에서 아세안+3 만나서 정상회담을 다시 했다. 대통령이 됐으니까. 그 분 이야기가 “우리가 민주화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계속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 바람이 미얀마까지 왔다. 이제 그르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제 한반도 거쳐 남미나 어디까지 갈 지 모르지만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장기독재정권이 역사적 변화를 가져오는 시대를 맞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한다. 북한은 인터넷도 되지 않고, 금융이 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SNS나 핸드폰이 없더라도 가장 위력은 구전홍보 같다. 사람이 사람에게 전달되는 속도도 무시할 수 없다. 무엇이 있다 없다는 것이 관계있는 게 아니라 어떤 경우라도 변화의 바람은 있을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통일을 생각해야 한다. 많은 정상들이 분단된 한국에 오면 (국민들이) 굉장히 불안해 할 줄 알았는데 자기들보다 더 불안해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에도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많은 사람이 판문점에 다녀갔다. 그런 점을 이해 못하는 분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사람이 분단돼 있는 위험한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고 생업에 종사해서 나라경제 발전시키고… 오직 그것만 생각하는 북한은 그래서 저렇지 않나 생각해 본다. 우리는 다 잊어버리고 하는 거고 막는 것은 군이 철저히 하는 것이다.
그래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통일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북이 곧 통일된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국민들이 이정도 죽기 아니면 살기로 경제발전 시켜서 남의 나라 도와주는 나라가 됐다. ODA만해도 2015년 되면 30억 불을 도와주는 나라가 된다. 대단한 거다. 이 정도 수준이 되면 우리가 통일문제도 생각을 해야 되고, 통일에 대한 준비도 해야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래서 통일기금을 만들고… 세금으로 당장 한다 이렇게 갑작스런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고 본다. 십시일반 자발적이라도 북한에서 건너와 성공하신 분들이 해도 되고… 여러 의미에서… 통일 항아리인가 만들고 있죠. 텅텅 비었죠? 상관없다. 만들었다는 자체가 의미 있다고 본다. 생을 살다 보면 개인이든, 가정, 기업이든 생각하고 준비한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통일부가 좋은 방향으로 일을 만들었다 생각한다.
탈북자 문제가 나와 있는데 과거 탈북자 문제 나올 때 남북관계 봐서 소홀히 한 게 사실이다. 북이 싫어한다고. 지금 미래 통일을 바라본다. 평화적 통일을 이야기하는 거다. 북이 잘돼서 좀 잘살게 되고 평화적 통일을 전제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통일을 염두에 둔다면 살기 힘들어 대한민국에 온 사람들을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제대로 해 주지 않고…, 다문화 가정은 정부가 여러 측면에서 한다. 아이들 낳기만 하면 초등학교까지 모든 걸 하고. 한국말 배우는 학원비도 대줄 정도로 진작 탈북자에게 우리가 그런 배려를 못했다는 점에서 3년 전부터 관심 가져서 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여기 통일연구원장도 와 있지만 (임명 당시) 그건 남북관계 좋지 않다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은 여당 국회의원이 될 정도로 변화를 주고 있다.
우리에게 북한 핵문제도 중요하지만 인권문제도 중요한 문제다. 결국은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권이 아니겠나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빵이 먼저지 인권은 다음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빵도 매우 중요하지만 어쩌면 21세기에는 빵 못지않게 개인 자유가 필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아프리카 정상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한민국이 아주 어려울 때 경제가 발전했다면서 ‘경제 발전이 먼저냐, 독재 정권을 민주화로 바꾸는 게 먼저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아봤다. 우리는 군사독재가 있었지만 민주주의가 완전히 없는 독재정권을 한 것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것은 이미 1960년대 이야기이고, 오늘 이 시대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민주주의와 경제는 같이 이뤄져야 당신들에게 희망 있다고 설명한다.
아무튼 우리가 이런 변화 속에 있다. 한국에서 지난번에 보니 미국하고 2.29 협상할 때 하고 나니 국내 일부 언론이 통미봉남이라고 크게 썼다. 다 그리 쓴 건 아닌데. 한국은 아직도 이렇게 모르나 한다. 통미봉남은 지나간 과거사다. 협상을 하든 뭘 하든 그것은 한·미 간에 합작이다. 미국도 이렇게 이야기했다. 한·미 간에 합작품이라고. 북한이 한국을 제치고 할 수 있나. 통미봉남은 20년, 30년 전에 쓰던 말을 오늘날에서 쓰고 있는 거다. 북한에서 보면 어떻게 볼까. 중국과 우리 관계 보면서.
새로운 용어다. 나는 오히려 ‘통중봉북’. (칠판에 직접 한자로 쓰면서) 이 말이 맞다고 본다. 북한에서 기분 나쁜 것은 뭐냐. 중국이 북을 제치고 한국과 하는 게 아니냐 이렇게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쓰는 건지 모르지만 그(통미봉남이라는 말을 쓰던) 시대는 다 지나가버렸고, 나는 북한이 볼 때 속이 상해있고 한 거 보면 통중봉북이다. 중국은 남과 통하고 북을 봉쇄하는 게 아니냐. 내가 4년간 후진타오 만나 이번에 정상회담하면 10번째인데, 원자바오 만난 게 6번인가. 하여튼 그 정도로 만난 거다. 김정일이가 살아있을 때 얼마나 다녀봤자 몇 번 만났나. 자꾸 만나면 별 이야기 할 수 있는 거다.
후진타오한테 ‘김정일을 좀 불러들여라. 자꾸 만나라. 보여줘라. 우린 개의치 않는다. 자꾸 보다보면 변화가 오지 않겠나’ 했더니 중국 후진타오, 원자바오 모든 고위직이 ‘이 대통령은 미래를 보는 사람이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웃음)
그런데 북이 보면 되게 속이 상한 거지. 이제 중국이 FTA하자고 하려들고 작년부터는 중국과 국방장관 회담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외교상으로는 가장 높은 관계를 맺은 거 아닌가. 후진타오 주석이 인도, 러시아 등 4개 나라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고 하더라. 북한 입장에서 보면 중국이 우리의 혈맹인데 한국과 최고 관계를 맺느냐? 이걸 평가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북한을 보는 게 좋다. 북한이 속상할 수밖에. 오늘날 시점은 중국이 한국과 통하고. 통미봉남은 상상도 못한다. 북한 사람도 이 이야기 들으면 웃을 거야. 그런 점에서 많은 변화가 지금 오고 있다.
미국과 관계는 특별히 말할 게 없다. 연설 중 47번 박수를 쳐서 이스라엘 수상이 28번인가 그런데, 의회 역사상 많은 박수 받았다 하더라. 진실된 솔직한 이야기를 한 거다. 나오면서 행정부끼리 맞으면 잘 지낼 수 있지만 의회와 잘 지내는 건 쉬운 일은 아니거든. 나올 때 의원들이 나한테 사인 받겠다고, 한 50명 가까이 사인해줬다. 미국 전통이 사인하는 건가 했더니 그런 전례가 없다고 하더라. 더 재미난 것은 한국대사관 통해서 상원의원 한 명이 지금이라도 보내달라고. 그걸 생각하면서 의회도. 한·미 간 관계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행정 떠나 의회와 관계도.
그럼 우리가 중국과 관계는 어떤가. 나는 중국도 북을 의식해서 한국에게 하고 싶은 말 못하고, 우리도 중국이 그런 입장이니 서로 말을 못할 뿐이지 한국과 중국은 상당 부분에 관계가 실질적으로 개선됐고, 앞으로도 대화가 급진적으로 미래에 대한, 앞으로 더 미래에 관련된 이야기가 되지 않겠나 본다.
북한은 당장 먹고 사는 게 힘들잖아. 이 지구상에 흰밥에 고깃국 먹는 게 국가의 지상목표가 되는 나라는 없잖아요. 북이 지금 원조 받아서 하는 걸 언제까지 받아서 하겠나. 작년에 베트남 주석을 만나서 주석이 먼저 이야기했다. ‘북이 3천 톤 쌀을 지원해 달라고 해서 옛날 도움을 많이 받은 관계가 있어 거절 못해 주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생각 잘했다’고 했다. 그 대신 당신네가 베트남에 북한이 와서 좀 배우게 해라. 미국과 수년간 전쟁하면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지 않나. 얼마나 죽었나. 우리도 참전했잖아요. 그런데 베트남이 미국과 완전히 국교 정상화하고 우호적 관계 됐잖아요. 우리 손에도 얼마나 많은 베트남 사람이 죽었겠나. 지금 연 7, 8% 성장하고 있지 않나. 당신네 그걸 가르쳐주라고. 우리가 계속 도와주기만 하면 언제까지 그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지 않나.
나도 시골에서 자랄 때 정말 밥도 못 먹을 때 그래도 가난한 부모가 자식들 교육을 시켰다. 같이 사는 이웃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 욕을 했다. 먹지도 못하면서 공부시킨다고. 남의 돈 빌려 공부시킬 생각 말고 밥이나 먹이라고. 근데 오늘날 보면 그렇게 이야기했던 집 아이는 별로고, 교육시킨 자식은 대통령도 됐잖아요. 옆에 살던 거지가 있었다. 박 모라고. 바로 옆에 단칸방에. 거지인데 그냥 밥 먹는 건 아무 그게 없어. 부모가 한 바퀴 돌아오면 펴놓고 밥을 먹는 거야. 그러면 이놈은 지가 나보다 형편이 나은 줄 알고 으스댄다고. 옷도 우린 꿰매고 꿰매고…. 1998년에 강의 간다고 LA를 갔더니 호텔에서 나를 꼭 만나겠다고 하는 사람 있다고, 결사적으로… 못 만나게 했는데 혹시 가다가 누가 뛰어와서 이야기할지 모른다 하더라고. 근데 내가 보니 빨리 알아보지 못하겠더라고. 40-50년 만에 만나니까. 근데 내가 박 아무개라고. 옆집에 살지 않았냐고. 그래서 호텔방에 데려갔지. 헤어지기 전에 나한테 한 이야기가 있다. 어렸을 때 나는 당신네보다 더 잘사는 줄 알았다. 우리가 가난했을 때 배고플 때 우리 부모는 얻어 먹이고, 얻어 입히고. 당신 부보는 못 벌면 굶기고 꿰매 입힌 자식은 다 잘되고. 나는 어떡하다 여기까지 왔다고. 자기 자식을 그렇게 키우지 않는다고. 큰 회사 회장도 되고 했다고. 앞에 이야기하는 건 신세타령이고. 얻어 먹이면, 계속 얻어만 먹이면 거지를 만드는 거다. 뭔가 배우고 다시 해야 되는 거다.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우리가 북한 경제를 자립시켜야 된다는 것이 초지일관된 생각이다. 밥 먹이는 건 쉽다. 중국이 흉년지면 굶어 죽고 했는데 오늘날 농지개혁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다. 집단농장 할 게 아니고 쪼개 바칠 건 바치고 네가 가져라 하면. 북도 그러면 쌀밥 먹는 거 하나는 2, 3년 안에… 북한사람들이 부지런하니까. 농지개혁을 하면 개인적으로도 더 벌고, 국가적으로도 수입이 는다. 북한은 그걸 해야 되는 거다. 젊은 지도자가 그것 하나하면 되는 거다. 제도만 바꾸면 된다. 그것만 하면 식량은 해결되는 거다. 가장 시급한 것이다. 개방 이전에 그것부터 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더 큰 대한민국으로 만들자는 것이 임기 중 목표다. 선진화가 목표지만 경제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자는 것이다. 경제도 한단계 더, 민주화도 그래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아프리카 가서 산업화, 민주화했다고 자랑만 할 수는 없다. 기업도 시대에 맞는 한단계 높은 기업의 윤리, 문화, 사회적 책임을 해야 한다. 동시에 민주화도 진정한 민주주의가 되도록 한단계 높여야 한다. 그걸 하지 않으면 후진국가에서 계속 10년, 20년 자랑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얼마 있지 않으면 산업화, 민주화 이뤘지만 그걸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한단계 더 성장해 진정한 민주주의 경제를 마련한 나라라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도 아직 부족한 게 많다. 그래서 선진화라는 말을 한다. 그래서 더 큰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
진정한 더 큰 대한민국은 통일이 이뤄져서 한반도가 하나가 됐을 때 될 수 있다. 통일이 되면 세계열강과 같이 존경받는 나라가 될 수 있고, 국민들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이 땅에 사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고, 세계 어떤 나라 사람들도 대한민국 국적 받아 사는 것이 자랑스럽다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게 됐을 때 정부의 더 큰 대한민국이 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
더 큰 대한민국을 하려면 한반도가 통일돼서 시간은 걸리겠지만 8천만 국민이 다 같이 행복하게 살아가고, 누구나 한반도에 태어난 것을 자랑하고 우리 문화와 역사를 자랑하는… 가능하다고 본다.
최근에 중동을 오랜만에 가 봤다. 사우디, 카타르, 아랍에미리트공화국. 한국은 과거 노동자를 보내 인건비 뜯어먹던 시대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기술이 필요한 분야에 들어오고. 그 나라에서도 70년대 초에는 한국이 먹고 살려고 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높이 평가하고 있고, 우리가 그 정도로 됐다고 생각한다.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지금 우리가 남북 간에 문제 선진화되는 과정도….
각자 자기 분야에서 협력을 해 주면 앞으로 5년, 10년 안에는 그런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오지 않겠나 생각한다. 이것을 부탁하러 왔다.
2012년 4월 20일
홍 보 수 석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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