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13일(금) 오후 파리7대학을 방문하여,「예술·문학·철학·고전학」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수락연설을 했습니다.
파리 7대학은 프랑스 내에서 한국학과를 최초로 설립한 한국학의 메카로서 현재 프랑스내 한국학 증진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이 대통령의 금번 방문은 프랑스내 한국학 진흥 및 양국간 교육 분야 교류 활성화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 파리7대학 한국학과
- 1970년 출범과 동시에 설립된 한국학과에는 150여명(학사 및 석박사 과정 포함, 2010.6.9기준)의 학생들이 있으며, 최근 들어 한국어과 학생들이 상당히 증가 추세
- 전공생이 아닌 한국어 수강생 수를 포함하면 약 900여명
- 특히, 2010년의 경우 한국학과 지망생 수가 전년도 대비 30%, 그중 석박사 과정은 230%가 증가할 정도로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크게 확산되고 있는 추세
- 동 대학교는 서울대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다양한 교류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외에 고려대학교, 광주과학기술원(GIST)과도 협력협정을 체결
▶다음은 수락연설 전문입니다.
존경하는 뱅상 베르제 총장님,
에두아르 위송 파리 대학구 부구장님,
이 자리에 함께 주신 여러 교수님과 내외 귀빈여러분,
미래 세계를 열어갈 청년 학생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저의 명예박사(docteur honoris causa)
학위 수여식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파리 디드로’ 대학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큰 방앗간’(Grands Moulins)1) 안에서 어우러진
* 1) 그랑 물랭(Grand Moulins). 대학 중앙건물의 별칭. 19-20세기 초 파리의 중요산업시설인 제분공장을 리노베이션함.
융합적 지성의 산실로,
높은 학문적 명성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대학에서 학위를 받게 된 것을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또한 프랑스는 물론 유럽 한국학의 메카라는 것에
더욱 깊은 애정을 느낍니다.
이 자리를 빌려 한국학과 학생과 교수, 관계자 여러분께
따뜻한 격려와 감사를 드립니다.
오랫동안 기업인과 정치인으로 살아온 내가
예술·문학·철학·고전학 명예박사학위를 받게 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불 공동의 가치)
내외 귀빈 여러분,
인류의 근대를 연 프랑스 정신은
무엇보다도 ‘인간’에 중심을 둔
인문정신(Humanism)이었습니다.
바로 이 대학을 상징하는
디드로(Diderot)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이
자유롭고 평등한 세계를 열었으며,
숭고함을 향한 열정이
인류에 대한 ‘박애’로 꽃피었습니다.
그 정신이 지난 300여 년간 전 세계로 불길처럼 번지며
인류의 이상에 불을 붙였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주의,
그리고 과학적 합리성에 대한 신념은
압제와 빈곤, 무지의 굴레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며
역사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중동의 재스민 혁명이 보여주듯
그것은 지금도 진행 중인 역사입니다.
오늘날 세계화 정보화로
지구촌이 점차 하나로 통합되면서,
인류는 하나의 운명공동체가 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지성 에드가 모랭은 일찍이
‘지구는 우리의 조국’임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는 모두 지구를 조국으로 삼아
인류 보편의 가치를 구현할 의무를 지니고 있고,
함께 이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 녹색 성장)
지구촌 공동체에서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는 너무도 많습니다.
핵과 테러의 위협, 에너지와 식량 위기
빈곤과 종교·인종 갈등 등
많은 문제들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후변화는
지구상 모든 생명체를 위협하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도전입니다.
환경을 보호하자면 현재의 경제체제를
희생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환경’과 ‘경제’의 양립이 필요하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2008년 대한민국이 제시한
‘저탄소 녹색성장’의 국가비전은
이러한 시각에서 나온 새로운 패러다임입니다.
녹색기술과 청정에너지로 환경도 보호하고
신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여
성장도 함께 꾀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유일한 길이자,
세계 모든 나라가 걸어야할 길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매년 GDP의 2%를
녹색분야에 투입토록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을 공포하여,
법적·제도적 기반을 갖췄습니다.
또한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 대비 30%를 줄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은 국제사회가 온실가스 비의무 감축국에 권고하는
최고 목표치입니다.
나아가 개도국의 환경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
''글로벌 녹색성장연구소‘(Global Green Groth Institute)를
설립했습니다.
이미 덴마크를 위시한 여러 나라들이
여기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나는 2009년 말 코펜하겐 기후변화 당사국총회에서
‘Me First'', ‘나부터 변화하자’고 역설했습니다.
서울 G20정상회의에 이어
금년 칸 G20정상회의에서도
녹색성장이 핵심의제로 논의될 것입니다.
녹색성장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세계적인 흐름이 되었습니다.
나부터 에너지를 절약하고
나부터 온실가스를 줄여야
지구를 보전할 수 있습니다.
물론 화석연료에 의존해 온 생활 전반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는 어려움도 따르고
또한 시간도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먼저, 적극적으로 앞을 헤쳐 가며,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기후변화의 위기는
우리가 한국인도, 프랑스인도 아닌
지구인임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인간과 지구를 함께 생각하는
''지구 책임적 시스템(Planet-responsible System)''을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한·불 교류사)
프랑스 국민 여러분,
한국과 프랑스의 첫 만남은
1836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파리 외방전교회’의 모방 신부2)가
* 2) 파리외방전교회(Société des Missions Etrangères de Paris), 모방(Pierre Philibert Maubant, 1803-1839). 선교차 한국에 온 것이 프랑스와 한국의 첫 접촉이었습니다.
그 후 선교사들이 계속 한국에 왔고,
그 중 한 분인 다블뤼 주교3)가
* 3) Marie Nicolas Antoine Daveluy (1817-1866)
처음으로 ‘한불사전’을 만들었습니다.
첫 만남 뒤 50년이 지난 1886년
한국과 프랑스는 ‘우호통상조약’을 맺고,
“양국 국민 사이에 어떤 사람이나 장소의 예외 없는
영원한 평화와 친선“을 약속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프랑스 정부는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즉각 파병했습니다.
269명의 프랑스 젊은이들이
잘 알려지지도 않은 동방의 한 나라를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쳤습니다.
60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있으며
한국인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파리 시민 여러분,
한국은 5천년의 긴 역사와 문화를 가진 나라로,
한국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15세기 한국에는,
한국의 르네상스를 꽃 피웠던 과학자이며 문화 예술가인
위대한 왕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 분, 세종대왕은 학자들과 더불어
아름답고 과학적인 우리의 고유문자, “한글”을 창제하셨습니다.
한글은 만든 사람과 제작 원리가 알려진
세계 유일의 문자이자,
‘언어학의 사치’라고도 평가받고 있습니다.4)
* 4) "한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문자의 사치이며,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문자"(콜롬비아대학 동양사학과 교수 G. Ledyard),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영국 다큐멘터리 작가, 문자학자 존 맨), “한국인들은 전적으로 독창적이고 놀라운 음소문자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세계 어떤 나라의 문자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과학적인 표기체계”(동아시아 역사가 하버드 대학 O. Reichaurer 교수)
이 때문에 유네스코는 1997년
한글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공인하고,
세계 문맹퇴치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세종대왕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한글의 간결함과 과학성은
한국을 IT 강국으로 만드는 데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부부가 모두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받으신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와
배우 윤정희 씨께서 함께 하고 계십니다.
아울러, 프랑스 문화계의 명실상부한 대부로서,
10년간 문화부장관을 역임하신
자끄 랑(Jack Lang) 의원께서도 참석해 계십니다.
최근 들어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 교류는
매우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아시아 영화 중 한국영화가 가장 많이 개봉되고,
연중 곳곳에서 특집행사가 벌어진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의 대중음악과 드라마도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의 이미지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pays du matin calme)에서
‘다이내믹 코리아’로 바뀌었습니다.
나는 지난 170여년에 걸친 양국의 만남이
보다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층 성숙되기를 바랍니다.
(한·불 청년 학생에 드리는 당부 : ‘위대한 일’에의 헌신)
사랑하는 청년 학생 여러분,
한국과 프랑스는 거리는 멀지만
두 나라 사람 모두 마음이 뜨겁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많습니다.
한국 젊은이들은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들로
기성세대와 달리
세계 곳곳에 나아가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젊은이들은
그 나라의 젊은이이자,
곧 지구촌의 젊은이이기도 합니다.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젊은 학생 여러분이 진심으로 부럽습니다.
나는 여러분과 세대는 다르지만,
여러분 못지 않은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잠깐 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돌이켜 보면, 나의 삶은 언제나
열정과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나의 젊은 시절, 대한민국은 매우 가난한 나라였고,
그 가운데 나는 더 가난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대한민국은
1인당 GDP가 100불 남짓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5)
* 5) 1965년 106달러
한국전쟁으로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되었고
세계 여러 나라들의 무상 원조를 받아
살 수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젊을 때부터 나는
이 숙명과도 같은 가난을 씻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기업인이 되어 아시아로부터
아프리카로, 유럽으로 다니며
남보다 빨리 세계를 직접 체험했습니다.
부국과 빈국을 모두 보면서,
인류의 빈곤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나의 조국은
불과 반세기만에 가난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2009년에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습니다.
2차 대전 후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 때 남의 도움을 받아 살았던 한 청년도
지금은 어려운 나라를 돕는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나 자신의 일생도 그렇지만
대한민국 현대사 전체가
극적인 비약의 경험을 한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직접 겪는 것은
실로 한 사람이나 한 국가의 역사에서
참으로 흔치 않은 것입니다.
지난 해 서울 G20정상회의를 개최하며
나와 우리 국민은 깊은 감회에 젖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기적을
세계 개도국의 기적으로 만들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서울 G20정상회의의 목표를
“위기를 넘어 다함께 성장”으로 삼고,
개도국의 발전을 도모하는 개발의제를 제안했습니다.
나와 대한민국은
세계와 어떻게 협력해야 해야 하는지
우리의 체험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익혀 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우리의 개발 경험이 필요한 나라와
‘한국형 개발 모델’을 공유할 것입니다.
이는 기존의 재정 원조는 물론,
개도국 스스로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자생력을 기르도록 하는 새로운 개발 전략입니다.
진정한 도움은
도움 받는 쪽을 따뜻하게 배려하면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단지 돕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을 가지고 스스로 일어서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난하고 배움도 적었던
나의 어머니로부터 이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어릴 때 나의 어머니는
이웃집에 일이 있을 때면 나를 보내 돕게 했습니다.
그러나 도움의 대가로
어떠한 것도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잔치 집에서 고마움의 뜻으로 주는 음식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마음에는
큰 기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고,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내가 자립심과 자주성을 갖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나, 남의 탓을 하지 않고
거듭되는 위기 속에서도
실패를 교훈삼아 당당하게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나는 어려운 형편 탓에 야간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청소 일을 하며 대학을 다녔지만,
내 친구들은 나의 가정형편을 알지 못했습니다.
30대 초 건설회사의 CEO가 되어
중소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으며,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을 거쳐,
2008년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가난을 극복해 온 지난 50년 동안
한 젊은이의 삶은 조국의 역사와 하나였습니다.
나는 지난 2009년
소외 계층에 대한 복지사업과 청소년 장학사업을 위해
제가 가진 재산을 기부했습니다.
나에게 도움을 줬던 이웃과
나를 성장시켜 준 조국에 보답하고자 하는 뜻에서 였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성숙한 세계국가를 지향하며,
인류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어려운 이웃과 세계를 돕는 인류애야말로
‘문명화’의 가장 높은 표현입니다.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젊은이가 함께 손잡고
이 세계와 인류를 위해
위대한 일을 하기로 결심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젊고, 이상이 뜨겁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젊은이 여러분,
한국에 한 번 오시기 바랍니다.
5천년 역사의 한국문화도 느껴 보고,
지구촌의 미래를 짊어진 젊은이들끼리
손도 잡아보시기 바랍니다.
(맺음말)
내외 귀빈 여러분,
나는 오늘 받은 이 명예박사학위가
파리7대학이 나 개인에게 주는 마음의 선물이자
프랑스가 대한민국에 보내는
깊은 이해와 신뢰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나라 사이에 맺어진 따뜻한 형제애(fraternité)는
앞으로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빛내 주신 모든 분들,
특히 미래의 지성들인 파리 7대학의 학생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제목 | 작성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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