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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버려진 물류창고에 매년 100만명이 모이는 까닭
2009.01.20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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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생산구조의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포디즘’에서 다품종 소생산, 즉 생산과 소비관계의 유연성을 도입한 ‘포스트-포디즘’ 시대로 넘어왔다. 이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변화이지만, 인간 삶이 근원하고 있는 자연과 생태 환경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였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인간이 본래 근원했던 자연의 본원적 가치와의 조화로운 삶이라는 점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은 정말 다행이랄 수 있다.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실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의 삶이 여전히 자연이나 생태 환경과 대척점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경제성장에 대한 시대착오적 장밋빛 환상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멀쩡한 건물을 헐어내고 초현대적인 디지털 첨단건물을 짓는 것이 성과로 간주되고 현란한 조명으로 밤하늘의 별을 가리는 것이 찬탄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색문화를 창조하고 싶다면, 좀더 가까운 사례들을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일본의 경우 폐시설 및 폐공간을 재활용해 과거와 현재를 잇고, 미래사회의 지향을 암시하면서 새 문화 활동 공간을 창조하고 있다. 이 사례들을 통해 개발 지상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문화와 환경이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문화와 예술이 재창조되고, 인간의 본질적 가치가 보존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 예술을 만드는 곳…오타루 운하

첫 번째 사례는 ‘오타루 운하’이다. 오타루는 19~20세기에 걸쳐 청어잡이로 부흥한 도시이다. 홋카이도의 각종 해산물과 농산물들이 집중되는 북해도 물류의 거점도시로 메이지 시대를 풍미했다. 이 과정 속에서 오타루 운하가 1910년대에 조성됐다. 이 운하는 내륙과의 연계를 목적으로 하는 운하가 아니라 물류를 하역하던 배들이 통과하던 물류하역용 운하이다.

오타루 운하는 일자형의 단순한 바다 물길이며, 이 길을 따라 낡은 벽돌 외관을 가진 60여 동의 창고들이 들어서 있다. 대부분 1890년대에 조성된 것으로 운하보다 먼저 생긴 것이다.

지난 1966년에 운하를 매립하고, 해안도로를 개설하려는 오타루항 재개발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 때 운하를 지키려는 시민보존운동이 시작되었고, 1980년에 결국 도로계획이 변경되면서 오타루운하와 창고들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오타루시는 운하 주변을 ‘경관형성지구’로 지정하고, 창고들의 외관 유지를 위해 ‘역사적 건축물 및 경관지구 보존조례’를 제정하여 다양한 재정지원과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후 이곳은 매년 1000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됐다. 낡은 창고와 가느다란 물길이 만들어내는 풍경 때문이다. 오타루시는 매립해서 도로를 만들어야 될 것 같은 운하와 철거해야 할 창고들을 보존하여 과거의 향수를 부르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사례는 ‘삿포로 팩토리(공장)’이다. 삿포로시는 일본 북방개척 시대의 전진기지였던 곳이다. 이 팩토리는 삿포로맥주 제1 제조소였다. 도청과 역사공원을 잇는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삿포로역이 개설되면서 도심부와 완전히 격리돼 결국 급격히 쇠락하였다.

이후 삿포로 공장을 교외로 이전하여 이 공간을 적극적으로 재활용하는 삿포로 팩토리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현재는 ‘시간소비형 복합 상업시설’로 활용돼 먹거리 공간 및 아트리움과 판매시설, 정보관련 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유리덮개로 덮은 아트리움은 시민들에게 겨울철 문화활동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폐업 공장과 공장터를 시민 문화 공간으로

마지막 예로, ‘창조도시’의 대표주자로 각광받는 일본의 가나자와시의 경우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지역 전통산업과 문화예술 자원을 지역발전의 원동력으로 발전시킨 대표적인 도시로 알려져 있다.

가나자와 예술촌의 실내외 전경

가나자와시는 인구 45만의 해안도시로 전형적인 일본의 중세도시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공습을 받지 않아 전통도시의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인구 유출이 적고 공간구조의 원형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이러한 장점을 살리기 위해 일본 최초로 ‘전통환경보존조례’를 제정하였고, 지역 특성을 살리고 개성 있는 역사문화경관의 보호와 유지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 조례에 근거하여 조망경관보존구역 내 고층건축물 제한 등 각종 건축행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설계자가 직접 경관 진단서 및 경관 시뮬레이션을 작성하여 사전협의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어 공간변경으로 야기되는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낡은 방적공장의 벽돌 창고를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 시민이 자유롭게 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획기적인 참여형 문화시설인 ‘시민예술촌’으로 바꾸었다.

폐업한 공장 터를 사들인 시는 시민들이 요구하는 연극, 음악, 세미나 등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4동의 창고는 드라마, 음악, 에코 라이프, 아트 공방으로 모습을 바꾸었고, 연습과 공연이 가능한 시설로 리모델링 하였다. 특히 일반 시민을 책임자로 선정하여 시설이용 활성화, 사업 기획 및 입안, 이용자간 조정 등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시민참여형 문화시설이 탄생한 것이다.

이렇듯 생각의 전환으로 폐공간은 지역주민의 자발성과 자부심의 원천이 되었고, 내발적 지역문화 발전의 성공케이스로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을 끌어들이는 유인 요인이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녹색문화 공간 사례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인간의 겸손함과 자연스러움에 대한 존중은 아무리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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