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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녹색 공동체 삶이 상품이 되다
2009.01.30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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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정 신라대학교 국제관광경영학과 교수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여 정도 떨어진 그레베인끼안티(Greve in Chianti). 대도시 피렌체의 그늘에 묻혀 인구 1만 4,000여명이 사는 특별할 것 없는 산촌마을이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이 마을은 인구와 소득 감소, 고령화 등 우리네 농어촌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마을은 활기가 없었으며 이렇다할만한 대표 산업도, 관광지도 없었다. 유일한 소득원은 해발 500~700m 산간의 계단식 경작을 하는 포도원과 올리브 농장이 전부였다.

최초의 슬로시티 이탈리아 그레베인끼안티 마을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장을 역임하고 있던 파울로 사투르니니(Paolo Saturnini)시장은 이 마을이 갈 길은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대단위 도시 개발, 공단유치 등을 통해 대도시에 통합되거나, 정반대로 아주 시골스럽고, 예스러운 것을 표방해 ‘작은 마을’임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는 오랜 고심 끝에 후자를 선택했다. ‘작은 마을’만이 갖고 있는 아기자기한 자연, 사람들의 정신적 풍요와 여유, 대도시로부터의 불편한 접근성을 지역의 상품으로 연출키로 한 것이다.

최초의 슬로시티인 이탈리아 그레베인끼안티 마을 전경

그는 당시 화제가 되고 있던 슬로우푸드(slow food) 운동에 가담하면서 단지 먹거리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방식과 환경을 함께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먹거리야말로 인간 삶의 총체적 부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지역 사회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진정한 슬로우푸드 운동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이탈리아 인근의 오르비에토, 브라라라는 몇몇 작은 마을과 함께 슬로우시티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파울로 시장은 주민들에게 슬로시티의 구체적 역할과 마을의 정책방향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물질과 기계에 속도에 맞추는 대도시가 패스트 시티(fast city)라면 이와 반대로 인간과 자연 환경의 속도를 존중하는 삶이 유지되는 슬로시티(치따슬로)를 주창한 것이다.

옛날식 삶의 방식에서 평범한 농촌의 살길을 찾다

그는 마을의 모든 행정과 정책을 슬로시티에 맞춰 진행했다. 마을의 토착 상점가를 살리기 위해 외부자본의 대형 슈퍼마켓 유입을 막았고, 외부인의 부동산소유를 제한했다. 농축산물 및 수공예품 생산도 옛날 방식을 고수해줄 것을 당부했다. 수제품 스파게티, 전통방식의 와인생산 등이 그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당장의 생활에 불편하고, 현대적 편리함을 추구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파울로 시장은 중소도시들이 모두 대도시를 표방한다면 그 도시의 정체성을 잃게 됨은 물론 대도시에 예속된 경제체제로 가게 돼, 결국은 경제개발로 인한 혜택이 지역주민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리고 ‘슬로’(느림)라는 것은 단순한 속도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에 대한 ‘즐거운 기다림’이라고 말했다.

파울로 시장의 끈질긴 주민 설득, 체계적이며 일관성있는 정책과 행정으로 슬로시티 운동은 인근 지역과 유럽 전체로 확산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방문객이 늘었고, 지역 생산품의 판매량이 증가했다. 주민들은 자부심이 생겼고, 지역 지닌 전통과 자연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게 되었다.

녹색 커뮤니티 운동의 교훈

현재 그레베인끼안티가 자랑하는 세 가지가 있다. 고용율 100%로 전주민이 직업을 갖고 있고, 소득수준이 이탈리아의 중소도시 평균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그리고 관광도시로서의 명성이 날로 높아감에도 불구하고 범죄율은 전국에서 가장 낮은 도시 중 하나라는 점도 자랑거리다.

그레베인끼안티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크게 4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철저하게 지역민이 중심이 된 커뮤니티운동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파울로 시장이 1992년경부터 아주 치밀하게 그리고 천천히 주민들을 설득해가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두 번째는 지역민을 주인공(마을의 콘텐츠)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국내외 언론이 오거나 인근지역에서 견학을 오면 마을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연출력을 선보였다. 정육점 주인, 포도농장주, 대를 이어오는 수제햄 가게 주인 등 한 사람 한 사람이 스타가 되도록 한 것이다. 이는 마을 주민들의 자부심을 높이고 단결토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레베인끼안티 마을은 지금도 옛날 방식으로 포도를 재배해 포도주를 만들고 있다. 한 주민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 번째는 지역의 산업발전과 관광객 증가가 철저하게 주민 소득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치밀함이다. 그레베인끼안티 마을은 방문객들로 하여금 일정 구역에만 주차를 할 수 있게 했다. 모두 걸어서 마을을 돌아다니게 함으로써 마을 전체를 하나의 자연친화적 산책로로 만든 것이다. 방문객들이 자연스레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동시에 마을에서의 체재시간을 늘려 지역내 소비를 높이도록 한 것이다.

네 번째는 파울로 시장의 그린 리더십(green leadership)이다. 그는 마을의 자연 환경과 정체성을 파악하고, 이를 주민들에게 알려 지역 상품이자 문화로 변모시켰다. 3번의 시장직을 끝낸 그는 지금도 좋은 리더로 남아있으며, 아무 집에나 들어가 차도 마시고 밥도 먹는 ‘슬로우 프렌드’(slow friend)로 남아있다.

2008년 12월 현재 슬로시티는 세계적 유행이자 문화가 되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12개국 110개의 도시가 가입돼 있고, 10여개의 도시가 가입을 진행 중에 있어 조만간 15개국 120여 곳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무분별한 난개발을 통한 발전보다는 지역의 고유성을 되살리며 자연과 속도를 맞추어 살아가는 그레베인끼안티 마을. 이제 우리도 환경과 인간이 공존하는 녹색 공동체 삶을 진지하게 모색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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