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해시와 해군이 공동으로 개발한 군항 문화탐방 코스가 인기 관광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8월 5일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디딘 군항 문화탐방은 3개월 만에 관람객 4000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군항 문화탐방은 지자체와 해군이 우리 해군의 모태이자 일제강점기 일본군 요새였던 지역 특성을 살리면 충분히 안보관광지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개발했다. 한국 해군의 현주소와 일본 제국주의 침략상을 느끼게 하는 군항 문화탐방은 서구 열강들 틈바구니에 낀 우리 근현대사 이해와 대국민 해군홍보, 국가안보관 확립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편집자>
늦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지난 15일 오후 2시 군항도시 진해. 경상남도 생활개선회장단 24명을 태운 중형버스 한 대가 ‘해군의 집’ 앞에 멈췄다. 진해시청 군항 문화탐방 안전지원센터 요원들이 탐방객들의 신원 파악과 군사 시설물에 대한 주의사항 교육을 마치자 버스는 해군기지사령부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섰다. 수령 100년이 넘어 보이는 소나무와 편백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다.
주도로 가장자리에는 진해의 명물이자 터줏대감인 벚나무 터널이 끝없이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차디찬 북풍한설에 도망치던 핏빛 단풍 행렬이 남녘 땅 진해에서 멎었다. 더 이상 퇴로가 없기 때문인지 오색 물감을 뿌려 놓은 듯 단풍은 애절하고 황홀했다.매년 4월 초 연분홍 꽃으로 전국 관광객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벗나무가 올 가을 화려한 ‘단풍옷’으로 갈아입고 경제난에 찌든 우리 국민에게 감동과 희망을 선사해 흐뭇하기만 하다.
해군기지사령부에는 희귀 문화재가 많다. 진해기지사령부 건물이 등록문화재 194호, 전 작전사 본관·별관이 각각 195호·196호, 해양의료원은 197호로 등재돼 있다. 우리나라 근현대 희귀 건축물 전시장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끝없이 뻗어 있는 넓은 주도로 오른쪽으로는 초대 해군참모총장이자 5대 국방부장관을 지낸 손원일 제독 동상과 세계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베트남전에 참전해 혁혁한 전과를 올린 지덕칠 중사 동상이 반갑게 맞는다.
왼쪽으로는 하루에 두 번 출퇴근 시간에 기적을 울리는 통해역, 이른 봄 노란 꽃을 활짝 피웠던 개나리 넝쿨 너머로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산책을 즐기던 오솔길이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다가온다. 또 대한민국에 오직 하나뿐인 벚나무에 기생하는 10년생 소나무가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작전사 앞에서 이승만 대통령 별장으로 들어서는 길은 ‘무릉도원’.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30여 종의 희귀 수종이 잘 보존된 ‘식물 전시장’으로 람사르 총회에 참석한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이 대통령 별장은 역사의 현장이다. 1949년 이승만 대통령과 장개석 대만 총통, 미 군정의 하지 중장이 별장 옆 육각정에서 태평양 동맹결성 준비회담을 가졌던 곳이기 때문.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아늑한 남해 쪽빛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별장과 육각정은 내부 수리 중이지만 주변의 나뭇가지만 남은 백일홍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단풍나무, 대한민국 지도 모형의 연못 등이 범상치 않은 역사의 현장임을 말해 준다.정위희(진주시 하대동) 씨는 “수려한 경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 별장 내부를 눈으로 확인하지 못해 아쉽다”면서 “다음 기회에 꼭 다시 와 보고 싶다”고 말했다.
다시 버스는 대한민국 해군의 산실인 군항 부두를 스쳐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으로 향했다. 해양경찰청 소속의 함정을 비롯 대형 상륙함 독도함, 충무공 이순신함 등 최첨단 함정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관광객들의 입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대한민국 정예 해군장교 양성의 산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은 23전 23승의 ‘해신’ 충무공 이순신과 해군 전력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곳.
특히 세계 최초 철갑선인 거북선이 박물관 주변을 지키고 있어 금방이라도 이순신 제독이 뛰어나올 것 같다.최달연(경상남도 농업기술원) 씨는 “안전한 해상교통로를 확보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세계 13대 교역국으로 성장하는 데 큰 몫을 담당한 해군의 역할과 해군 함정을 둘러보고 세계로 뻗어가는 해군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면서 “대한민국 해군의 산실은 해군사관학교를 눈으로 확인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물관 2층으로 발길을 옮기자 조선군의 용맹과 나라를 지키려는 의지가 깃든 어재연 장군의 수(帥)자기가 반갑게 맞았다. 오른쪽으로 이충무공실과 해군해양실이, 3층에는 해사실이 자리 잡고 있다.
이충무공실은 이순신 제독의 생애, 임란 당시 무기, 선박의 그림, 해전도에 대한 설명과 첨단 화포 신기전 등 212점의 자료가, 해군해양실에는 손원일 제독 유품, 98년 국제관함식 참가국 및 전력,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모형 함정 등 319점의 역사 자료를 전시해 놓아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3층 해사실에는 1기생부터 올해 졸업생들의 졸업반지와 졸업생 명단을 동판에 새겨놓았다. 한국 해사 생도복장 변천사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캐나다·러시아 등 세계 각국 해군사관학교 생도복장 등 315점의 기념자료를 전시해 놓았다.
특히 박물관에는 국가 지정 보물이 2점 있다. 안중근 의사 친필 유묵(생전에 남긴 글이나 그림) 임적선진 위장의무(臨敵先進 爲將義務 : 적을 맞아 앞서 나가는 것은 장수의 의무다)와 임란 때 우리 수군이 사용했던 포인 중완구가 각각 보물 569-26호, 859호로 지정돼 있다.
한말순(진해 농업기술센터) 씨는 “진해를 찾는 손님들에게 마땅히 보여줄 게 없었는데 해군과 진해시가 손잡고 개발한 군항 문화탐방 코스가 시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면서 “이제 진해가 벚꽃이 피는 군항제 시기뿐만 아니라 일 년 365일 찾고 싶은 관광지로 경쟁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군항 문화탐방 코스 참여 방법 : 내국인은 탐방 희망일 5일 전까지 진해시 홈페이지(jinhae.go.kr)-감동 관광-군항 문화탐방-참가신청란에 신청서를 접수시키면 된다. 군항 문화탐방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진해시 문화관광과 055-548-24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