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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소아과 의사가 뮤지컬 대본을 쓰게 된 사연
2009.02.20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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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란 씨는 현직 의사다. 분당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어린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서울대 조교수로 학생들도 가르친다. 양 교수는 또 초등학생 두 딸 아이의 엄마다.

바쁜 그녀에게 특별한 타이틀이 하나 더 있다. ‘뮤지컬 극작가’. 양 교수는 2007년 초연 후 올해 전국 투어까지 하는 국악 뮤지컬 ‘러브 인 아시아’ 대본을 쓴 주인공이다.

지난 19일 인터뷰 장소로 향하다 마침 4층 소아병동에서 회진을 돌던 양 교수와 우연히 마주쳤다. ‘미소가 참 따뜻한 사람.’ 그녀의 첫 인상이다.

어린 환자들을 대하기에 맞춤인 부드러운 음성과 표정을, 고스란히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담은 작품 ‘러브 인 아시아’에 녹여낸듯한 작가, 양혜란 교수를 만났다.

#1. 의학도 된 책벌레 문학소녀, 다시 ‘작가’로

양 교수는 문학소녀였다. 학창시절 쓴 습작노트만 한 보따리다. 고등학교 수학 교사이던 아버지가 무시로 전집채 들여놓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 별명도 ‘책벌레’였다. 셰익스피어·모파상 전집, 세계 시나리오·희곡 전집도 이 때 거의 독파했다. 전문 작가 훈련을 한 번도 받은 적 없었지만 양 교수가 극작가로서 내공을 갖추게 된 배경이다. 집안 분위기상 ‘이과’로 진로를 정한 고등학교 1학년 말 어느 날이었다.

“동네 소극장에서 생전 처음 연극을 봤어요. 충격을 받았죠. 사람 마음을 이렇게 움직이는 게 있구나, 나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메시지를 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날 집에 돌아와 앉은 자리에서 단편소설 한 편을 썼다. 그리고 부모님께 문과로 전과하겠다고 ‘선언’했다. 부모님 대답은 ‘노(No)’. 아버지께선 수줍은 딸 성격엔 혼자 작업하는 직업이 어울린다며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권하셨다. 컴퓨터와 평생을 씨름하기 싫었던 양 교수는 차선책으로‘사람’ 대하는 직업 갖겠다며 의대를 택했다. 공부와 시험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면서도 글쓰기에 대한 갈망이 가슴 한켠에 남아 있었다.


“결국 인턴 끝나고 ‘글 한 번 써보자’며 1년 정도 쉬었어요. 그 때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글도 쓰면서 인생 공부 많이 했죠. 그러나 결론은 ‘내겐 재능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웃음)”

양 교수는 ‘좋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잘하는 일을 하면서 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의료계로 컴백,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일하며 결혼하고 아이들도 낳았다.

#2. 남편 외조로 이룬 ‘어릴 적 꿈’

글쓰기에 대한 열정은 결혼 이후 다시 살아났다. 남편인 김창곤 국립국악원 정악단 부수석 덕분이다.

“남편은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글쓰기에 대한 어릴 적 꿈도 남편이 다시 상기시켜줬습니다. 2006년 말 ‘국악뮤지컬 대본 공모가 있는데 한 번 도전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는데, 그 때 머뭇거리다 쓴 작품이 ‘러브 인 아시아’입니다.”

옥고 탄생의 숨은 산파인 남편은 ‘러브 인 아시아’ 초연 때부터 예술감독으로 극에 참여했다. 양 교수가 원래 제목으로 생각했던 ‘모꼬지(순 우리말로 ‘잔치’라는 뜻)’ 대신 ‘러브 인 아시아’란 제목을 달아준 이도 남편이다.

그렇게 태어난 ‘러브 인 아시아’는 2007년 초 경기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무대공연작품 제작지원사업공모’에 당선, 그해 가을 경기도 안산에서 초연을 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호평이 이어졌고 지난해엔 국립극장 무대에도 올랐다. 그러다 올해 11개 지역 전국투어에까지 나서게 됐다.


‘러브 인 아시아’는 판소리와 뮤지컬이 결합된, 일종의 퓨전 창극이다. 작품 안에는 판소리와 뮤지컬 음악뿐 아니라 베트남과 몽골 음악도 등장한다. 각 음악들이 인물 심경과 상황에 맞게 표현됐는데 특히 시어머니의 ‘한’을 표현하는 장면에선 ‘판소리’가, 아이 낳는 장면에선 장구, 북 등 국악기 장단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뮤지컬은 정말 ‘종합예술’입니다. 대사는 제가 썼지만 창극에 알맞은 형태로 만들기 위해선 운율과 장단까지 신경써야 했는데 이 부분은 국립창극단 이영태 선생님 도움을 받았어요. 음악은 비의 ‘레이니즘’ 등으로 유명한 배진렬 작곡가 등이 담당했어요. 이 외도 안무, 의상, 무대 등 많은 분들이 밤새워가며 노력해야만 작품 하나가 무대에 올라갈 수 있더라고요.”

‘남편 만나기 전까진, 그리고 글을 쓰기 전까진 의사들만 힘들고 고된 직업인 줄 알았다’며 웃는다.

‘엄마 최고’라며 용기를 주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아이도 양 교수에겐 훌륭한 후원자다.

“아이들은 리허설에, 집에서 보는 리뷰에 줄잡아 10번 이상은 봤을 거예요. 5번까진 ‘재밌다’고 해주더니, 이제 ‘더는 못 보겠다’고 하네요.”

#3. “피부색·언어 달라도…같은 하늘 아래 사는 같은 식구”

‘러브 인 아시아’는 전남 고흥의 한 종갓집으로 시집온 옌볜·필리핀·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 며느리들과 전통을 고수하는 시어머니의 갈등과 화해를 그렸다. 왜 하필 다문화 가정 얘기일까.

“어릴 때 친하게 지내던 옆집 언니네 집이 다문화 가정이었어요. 아버지는 중국인, 어머니는 한국인이셨죠. 두 딸이 어릴 때 봐주시던 아주머니도 옌볜 분이셨고요. 분당 서울대병원을 찾는 환자 중에도 다문화 가족이 많아요. 저에게 다문화 가정은 낯선 소재가 아닌거죠.”

특히 제3세계 국가 출신 엄마들은 아픈 아이 상태에 대해 정확하고 자세히 설명을 잘 못해 의사로서도 늘 안타까웠다고 했다.

“동료 의사들 얘기 들어보면 어떤 지역은 신생아실 반 이상이 다문화 가정 아이라고 해요. 그런데 여전히 병원에서 영어 이외 언어에 대한 통역은 쉽지 않으니 문제이죠. 제3세계 언어를 쓰는 분들도 신속하게 통역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해요.”

여전히 다문화 가정이라면 색안경부터 쓰고 보는 이들에게 양 교수가 하고픈 얘기는 없을까.

“극 중에 ‘우리 모두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같은 식구 아니냐’라는 대사가 있어요. 단일민족 신화에서 벗어나 이제 ‘우리’라는 외연이 조금은 더 넓어지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공연을 보셨으면 좋겠어요. 보시는 분들이 즐겁다, 재밌다고 느끼면 다문화 가정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만큼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다소 어두운 현실을 다루고 있지만 공연이 ‘축제’로 끝나고 ‘잔잔한 감동’으로 남는 이유가 이해됐다.

양 교수의 차기작은 오는 4월 무대에 오르는 ‘행복동 고물상’이다. ‘사랑스러운 노인 치매환자 이야기’란다. 역시 아픈 얘기를 따뜻하게 풀어냈겠구나 싶다.


◆ 다문화 국악 뮤지컬 ‘러브 인 아시아’는?

시골의 한 다문화 가정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웃음과 감동으로 그린 국악뮤지컬 ‘러브 인 아시아’가 오는 21~22일 오후 3시 서울 국립극장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11개 시·도 지역에서 '무료 순회공연'을 한다.

한국전통문화예술단 소리나루(단장 이영태)가 2007, 2008년에 이어 세 번 째로 무대에 올리는 ‘러브 인 아시아’는 중국, 필리핀, 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 출신 세 며느리와 전통을 고수하는 시어머니 사이의 갈등과 애환, 화해를 그린 작품이다.

오는 21일부터 전국 11개 시·도 지역 무료 순회공연에 나서는 ‘러브 인 아시아’ 공연 모습.<사진=한국전통문화예술단 소리나루>

강호중 추계예술대 교수가 총감독, 김창곤 국립국악원 정악단 부수석이 예술감독, 이영태 단장이 연출을 각각 맡았고 양혜란 분당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대본을 썼다. 지난 두 차례 공연을 통해 작품성과 재미를 두루 갖춘 작품으로 크게 호평 받은 바 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1일 서울 개막공연을 다문화 가정, 일반 시민 400여 명과 함께 관람한다. 이 자리에는 일본,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각국 대사들도 참석할 예정이다.

문화부는 ‘문화로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국민과 함께 하는 희망 프로젝트’ 일환으로 이번 ‘무료 순회공연’을 마련했다. 다문화 가정과 소외계층을 일정 비율 우선 초청하며 일반인은 문화부 홈페이지(www.mcst.go.kr)를 통해 관람 신청을 받고 있다. 공연은 3월 말까지 주말마다 이어진다.

문의 : 문화체육관광부 다문화정책팀 02-3704-9726

문화체육관광부 홍보지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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