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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외국의 미디어규제, 제대로 보니…
2009.02.09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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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일 한나라당 미디어특위에서 발표한 7개 미디어법 개정안을 놓고 해를 넘긴 지금까지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각종 토론회가 연일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찬성과 반대 시각 사이에 좀처럼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정부 여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방송법을 비롯한 나머지 5개 미디어법도 상정해 통과시켜야만 한다는 입장이다.

경직된 독점적 시장구조에서 벗어나야

미디어법 중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법은 이른바 방송사업에 대한 진입·소유규제를 완화한 방송법 개정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규제완화에 대해서는 찬반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제5공화국 초기에 언론통제목적으로 형성된 폐쇄적이고 경직된 독점적 시장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지상파방송사 중심의 소수 사업자 구도에서는 이러한 이른바 '공공독점(public monopoly)'구조를 통해서 방송의 공익성과 상업적 이윤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이후 등장한 다채널방송들과 21세기 들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디지털 융합미디어들로 인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더 이상 그 정당성이 사라지고 있다.

이 때문에 어떤 방송사업자도 확실한 상업적 이윤을 보장 받을 수 없고, 공공적 책무도 제대로 실현할 수 없게 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공익적 책무는 고사하고 생존자체가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우리 방송시장은 매우 엄격한 진입장벽을 거쳐 시장에 진입한 사업자들이 경영난에 빠져도 공익성을 심각하게 위협해도 퇴출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공익성을 명분으로 형성된 진입장벽이 방송시장에서의 경쟁을 실종시키고 기존 사업자들을 제도적으로 보호해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송의 공익성과 산업적 활성화 어느 것도 도모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디지털 경쟁시대에 맞는 규제완화를 통한 구조개편과 합리화가 요구되고 있다.

디지털미디어 규제체제, 글로벌 트렌드 제대로 봐야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우리만이 경험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본래 시장경쟁을 강조했던 미국이 아니더라도, 공영방송 중심의 방송구조를 유지해 온 유럽국가들도 1990년대 이후 꾸준히 민영화와 규제완화 정책기조를 강화해 왔다. 공영방송을 민영화시킨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대부분 유럽 국가들이 다양한 형태의 상업방송들을 허용해 왔다.

특히 21세기 들어서 디지털미디어 시대로 전환되면서 이러한 방송구조개편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물론 새로운 정책방향이나 구조개편 양상이 모두 똑같지는 않다. 영국의 경우에 2003년 커뮤니케이션법 제정으로 공영방송인 BBC를 제외한 모든 방송통신분야에서의 진입규제들을 거의 철폐시켰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국가 혹은 사적 소유를 금지해 온 지상파방송사들을 제외한 모든 뉴미디어분야에 대해 경쟁체제를 도입하였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프랑스 역시 공영방송과 상업방송을 엄격히 구분해 서로의 역무를 분명히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미디어 개혁법안이 최종 통과되었다. 이로써 프랑스의 공영방송은 오후8시 이후 이른바 프라임타임시간대에는 상업광고를 할 수 없게 된다. 한마디로 공영방송의 공적 재원을 통해 공영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혁은 방송의 공적 영역을 더욱 확고히 하면서 동시에 디지털방송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이원전략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송구조 개편들은 한 가지 기본 방향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방송의 공익성을 명목으로 형성된 지나치게 높은 진입장벽을 완화하는 것이다. 1995년 통신법을 통해 방송과 통신의 진입장벽을 헐어버렸던 미국을 비롯해서, 유럽국가들 역시 매체간 구별이 없어지는 것에 대비해 진입소유규제를 대폭완화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국가에서 진입장벽은 이른바 신문과 방송의 겸영문제이고, 외국자본의 진입허용문제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대기업 진입문제는 다른 나라에서는 법률적 개념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기업의 언론장악으로 인한 폐해는 외국사례와 전혀 무관하다.

외국의 진입·소유규제 논의의 허구성

그런데 최근의 정부의 소유규제완화에 대해 각국의 진입규제사례들을 인용하면서 비판하는 입장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선진각국들의 진입·소유규제가 신문·방송겸영이나 외국자본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 보완장치를 전제로 전반적인 규제수준을 완화하고 있다는 점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많이 제기되고 있는 신문방송 겸영 문제를 들 수 있다. '겸영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라는 주장이나, '완전히 겸영을 허용하는 나라는 없다'라는 주장 모두가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해서 두 주장 모든 잘못된 주장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주요 국가들의 경우 신문과 방송 겸영을 전면 금지하는 나라는 없고, 반대로 이에 대해 조건이 없는 나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조건이 가진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먼저 신문과 방송의 겸영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이른바 '여론의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전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매체의 수가 제한된 지역단위에 대해서 주로 제한규정을 가지고 있다. 2006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규제완화 안이나 일본, 프랑스 등이 지역단위에서의 여론독점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다만 영국의 경우에는 시장점유율이 20%인 이상의 신문에 한해서만 제한된 신문방송겸영을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신문·방송 모두 지역단위의 여론독점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전국지라고 하는 주요 3개 일간지가 전국적으로 60%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고, 지역신문은 거의 유명무실한 것이 현실이다. 지역방송 역시 거의 대부분 중앙의 ‘중앙방송국'(key station)이나 서울의 민영방송을 재송출하고 있는 상태에서 지역 여론독점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조금 과장하자면 지역단위의 여론자체가 없는 상태에서 여론독점의 폐해를 논하는 것은 우스운 일일 수도 있다.

현재의 구조가 오히려 여론 독점 초래할 수 있어

또한 여론독점 문제를 지적한다면, 반드시 여론형성과 관련된 시사·보도, 특히 정치관련 보도프로그램이 포함된 방송을 문제 삼아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와 관련된 지상파방송이나 보도·종합편성 채널 자체가 엄격한 진입장벽으로 독점되어 온 분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3개 지상파방송사업자와 2개의 보도전문채널 자체가 여론 독점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한 신문사, 대기업의 진입을 허용하는 것은 여론매체를 늘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지, 기존의 방송사들을 인수합병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그 동안 소수의 여론매체들에 의해 독점되었던 매체환경을 도리어 완화시키는 효과가 더 클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신문·방송 겸영을 규제하는 다른 나라들의 기본인식은 양적 규모나 사회적 영향력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방송사들이 신문사를 소유하는 문제의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 법적 미비상태에서 신문사들이 방송사업에 진입한 일본을 제외하고 대부분 나라들이 신문방송겸영으로 신문산업 특히 지역신문의 고사 위기를 우려하고 있다. 그러므로 겸영허용을 반대하는 측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이른바 '조중동'에 의한 방송시장 장악 혹은 여론독점은 최근 매체환경을 도외시한 다분히 왜곡된 주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자본의 직접투자 허용, 그러나 내용 규제는 강화

한편 외국자본 진입과 관련해서도 대부분의 나라들이 외국자본 진입을 완전히 금지하는 경우는 없다. 더 나아가 FTA 등의 영향으로 방송시장개방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주로 외국자본에 대한 직접 투자는 허용하지만, 문화적 주권을 보호하기 위한 내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법이 더 유용하다. 자국 프로그램 쿼터 의무비율과 같은 편성규제를 통해 방송주권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방송시장개방 논의를 살펴 보면, 직접 투자에 대해서는 강하게 저항하면서 반대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관대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는 방송시장 개방 규체체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공급자 중심 미디어 시대는 이제 끝났다

방송규제완화에 대한 시각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디지털미디어시대의 방송패러다임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볼 때, 새로운 디지털미디어의 등장과 경쟁 그리고 시청자들의 선택은 불가피해 보인다. 때문에 이른바 공급자가 주도하는 미디어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미디어는 이제 여론을 형성하고 주도하는 주체가 아니라 시청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의견의 하나를 제공하는 하나의 정보원일 뿐이다. 이미 인터넷 공간이 이러한 현상을 충분히 예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책적으로 여론다양성을 조성한다는 것은 인위적으로 여론은 형성하는 매체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양한 의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다중 네트워크 시대'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이번 방송법에서의 진입소유규제완화는 언론을 독점하려는 정치적 의도성보다 여론독점을 완화하려는 시대적 추세에 맞는 규제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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