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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이들이 바로 이 시대 숨은 애국자들
2009.04.14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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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곳곳에는 헌신적인 나라사랑으로 국민에게 희망과 감동을 전해주는 이들이 있다.
몸과 마음을 다해 나라사랑에 앞장서고 있는 숨은 애국자와 단체들이다. 이들의 빛나는 활약상을 소개한다.

■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대한민국 1등 독도지킴이”

서경덕씨는 해외 유수 언론에 광고를 내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고 있다.
지난해 7월 9일 미국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에 동해와 독도를 알리는 전면광고가 게재돼 화제를 모았다. ‘당신은 알고 계십니까?’라는 헤드라인을 단 이 광고에는 “지난 2천 년 동안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는 ‘동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고, 동해에 자리한 ‘독도’는 한국의 영토다. 일본 정부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인 8월 25일 <워싱턴포스트>지에는 ‘역사왜곡을 중단하라’는 제목의 광고가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의 부당함을 알리는 글과 함께 실렸다.

이 일을 벌인 사람은 뜻밖에도 정부당국이나 관계자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사고’를 친 평범한 국민이었다. 주인공은 바로 한국 홍보 전문가로 알려진 서경덕(35) 씨다.

“대학 시절 유럽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우리 문화를 세계만방에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가 경제대국인 줄 알았는데 외국인들은 한국을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대학 졸업 후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 사무실을 내고 본격적인 한국 홍보에 나섰죠.”

서 씨가 한국 알리기에 앞장서온 지도 어느덧 15년째다. 그는 해외 유수 언론에 독도, 동해, 위안부, 고구려 관련 광고를 실었을 뿐 아니라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강익중 씨와 함께 ‘한글 세계 전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세계 유명 박물관에 영문으로 된 한국 안내책자를 비치함과 동시에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세계 유명 대학의 한국학 연구실에 자료 보내기 운동도 펼치고 있다. 파리 에펠탑 광장에서의 8·15 광복절 행사, 다이내믹 코리아 대학생 해외봉사단도 그가 기획했다. 지난해 말 독도 주연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미안하다, 독도야’의 기획 프로듀서를 맡기도 한 그는 영화를 DVD로 제작해 재외동포 2, 3세들이 다니는 전 세계 한인학교에 배포했다.

“누리꾼(네티즌)과 독지가들이 전방위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어요. 그들의 단결된 모습이 한국 홍보 활동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미국 일간지 광고 게재 때도 가수 김장훈 씨와 10만여 명의 누리꾼이 동참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지난해 8월 독립기념관 명예홍보대사로 위촉된 서 씨는 김구 선생의 어록이 새겨진 ‘나의 소원’ 한글 작품과 독도 앞바다에 설치됐던 대형 태극기를 독립기념관에 기증, 전시되도록 힘쓰는 등 지원과 성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서 씨는 독립기념관과 함께 ‘범국민 역사자료 기증운동’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계기로 추진하는 이 캠페인은 광복절인 8월 15일까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역사자료를 기증받아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고 올바른 역사교육과 독립운동사의 연구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기획됐다. 독립운동가, 국회의원, 역사학자, 문화예술인 등 각계각층 인사들로 구성된 추진위원회는 서울, 부산 등 대도시를 돌며 거리 홍보전을 펼치는 한편 해외동포들에게도 널리 알려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이 캠페인에는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국난극복사, 독립운동사, 영토에 관한 것이면 어떤 자료든 접수가 가능하다. 독립기념관 홈페이지(www.i815.or.kr)에서도 기증의향서를 접수받고 있다.

“역사자료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나라사랑 정신을 다시금 함양하고, 나아가 후손들로 하여금 역사자료를 안정적으로 보존하고 계승케 하기 위해 이번 일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독도 수호를 위해서도 관련 자료의 데이터베이스화가 우선돼야 합니다. 기증된 자료는 9, 10월께 특별기획전을 통해 일반인에게 공개할 예정입니다.”

서 씨는 지난해 누리꾼들이 보내준 성금으로 5월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중 한 매체에 또 한 번 독도 광고를 내기 위해 조율하고 있다. 12월에는 기업 후원금을 모아 뉴욕 한복판에 있는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독도 홍보 영상물을 상영할 계획이다.

■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
“비즈니스룩과 태극 문양의 만남”

김영세 씨는 태극과 사괘의 라인을 모티프로 한 디자인 상품으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산업디자인계의 미다스로 통하는 김영세(59) 씨는 태극기 라인을 모티프로 한 디자인 상품으로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다. 김 씨는 세계적인 필기구 디자인 컬렉션 애크미(ACME)가 2004년과 2007년, 두 번에 걸쳐 컬렉션의 주인공으로 선택한 디자이너다. 한국을 상징하는 문양인 태극을 디자인 패턴으로 응용한 애크미 태극컬렉션 시리즈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백미다.

김 씨는 태극기에서 볼 수 있는 태극과 사괘가 직선의 강직함과 곡선의 부드러움으로 한국인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특히 면과 색이 아닌 태극의 선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 결과 첫 번째 애크미 태극컬렉션은 태극의 둥근 곡선을 담아 동양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줬고, 2007년 출시된 태극컬렉션II는 사괘를 이용해 한층 남성적인 이미지로 사용자의 스마트한 비즈니스룩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상품? 2009/04/15 공감은 커프링크스, 명함지갑, 펜, 키홀더 등 4종이 출시됐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김 씨는 지난해 6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4차 회의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태극 문양의 MP3플레이어를 선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코리아 아이덴티티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낸 것”이라며 “융합시대에는 디지털과 디자인이 결합하면 꿈이 된다. 이명박 정부가 우리나라의 디지털 기술과 디자인을 결합한 성장동력 창출에 집중할 것으로 믿는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김 씨는 서울시가 운행할 최신형 한강 유람선의 외관을 태극 문양으로 디자인하는 등 자신의 영역을 산업 부문에서 생활문화 부문으로 넓혀가고 있다. 경제를 살리는 길은 디자인이며, 디자인 강국이 경제 선진국임을 강조해온 김 씨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승부를 걸어야 한다”며 “태극 문양의 곡선과 직선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데,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모던함을 가미한 디자인으로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 예비역 육군대령 진석근
“사비 털어 만화 ‘독도의 진실’ 출간”

독도에 대한 살아있는 지식과 역사를 만화로 풀어낸 예비역 대령 진석근 씨.
지난해 10월 예편한 예비역 육군 대령 진석근(55) 씨는 자비로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는 청소년용 만화책을 발간했다. 진 씨가 그동안 육군 독도 전문가로서 써온 글을 요약해 만화로 풀어낸 <독도의 진실>에는 독도의 위치와 역사,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법적, 역사적, 실제적 자료 등이 담겨 있다. 이 만화책은 진 씨가 1996~1997년 일본 육상자위대 간부학교에서 위탁교육을 받을 때 쓴 졸업논문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진 씨는 독도에 관한 한국의 견해를 솔직히 알리고 양국 안보 관련자들이 독도를 양심적으로 이해하자는 뜻에서 ‘독도 영유권에 대한 한일 양국 주장의 비교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제출했다. 이 논문이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을 한국과 일본의 사료(史料)를 통해 입증하자, 당시 자위대 간부학교 심사위원들은 이 논문의 통과 여부를 두고 찬반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진 씨는 “일부 일본 장교들이 ‘독도는 일본 땅인데 왜 자꾸 그러느냐’고 항변하는 것을 보고 논문 주제를 정했다”며 “자위대 간부학교는 이 논문을 승인하는 대신 표지에‘개인 의견’이라는 문구를 넣도록 했다”고 밝혔다.

독도기념관은 일본 영토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자위대가 진 씨의 논문을 이수한 사실을 ‘독도가 한국 땅’임을 알린 기념비적 사건으로 평가하고, 2006년 진 씨에게 논문을 기증받아 영구 전시하고 있다.

독도뿐 아니라 우리 역사 전반에 관심이 많은 진 씨는 <잃어버린 우리 상고사> <우리 땅 우리 혼> 등의 책도 펴냈다. 지난해 위암 수술을 받고 현역에서 물러난 그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막연하게 알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살아 있는 지식과 역사를 좀 더 쉽게 알려주고 싶어 만화책을 펴냈다”며 “독도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효과를 높이려면 해병대로 하여금 독도를 지키게 하고, 세계 각국 출판업계와 민간 외교단체에 대한 지원을 늘려 독도가 우리 땅임을 꾸준히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3기 공군 부사관 정소진 하사
“3대째 한길… 조국의 항공을 수호한다”

정소진 하사(왼쪽)와 그의 임관식에 참석한 아버지 정기영 대령.
제203기 공군 부사관 후보생 임관식이 지난 3월 31일 경남 진주의 공군교육사령부에서 열렸다. 이날 임관한 2백91명의 신임 부사관(여군 54명 포함) 중에는 3대째 공군의 길을 이어가는 정소진(20·항공관제) 하사도 있었다. 정 하사의 할아버지는 1955년 공사 3기로 임관해 1978년 퇴임 때까지 23년 동안 베테랑 조종사로 이름을 날린 고(故) 정진섭 예비역 대령이다. 아버지인 정기영 대령은 현재 공군 항공우주의료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정기영 대령은 한국 최초의 우주인인 이소연 박사의 주치의를 맡기도 했다. 정 하사의 형인 정소원 중위는 지난해 공군사관학교를 56기로 졸업하고 현재 서울대 약학과에서 위탁 교육을 받고 있다.

정 하사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공군관사에서 생활하며 공군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묵묵히 자신의 일에 헌신하며 조국 수호에 앞장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보며 군인의 길을 꿈꿨다. 대학 진학 후 군 입대 시기가 다가오자 주저 없이 공군을 선택한 정 하사는 “훈련이 힘들겠지만 최선을 다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항상 가슴에 새기며 훈련에 임했다. 훈련과정 중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 때마다 공군 선배인 아버지의 조언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정 하사는 “아버지가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며 늘 자랑스러웠다”며 “할아버지와 아버지께 느꼈던 당당하고 멋진 공군 간부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 독도 품은 이종상 화백
“화가들 뜻모아 60인 문화의병 조직”

이종상 화백은 지극한 독도사랑을 독도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품에 꼭 안고 싶다. 보라색 안개로 띠를 두르고 금세 용광로에서 흘러내린 듯한 기암, 독도. 너무 급한 마음에 타고 가던 거룻배에서 훌쩍 물속으로 뛰어들어 첫발을 내디뎠다.… 독도의 산천이 이리도 아름다웠던가. 동도(東島)가 수줍어 엎드렸는데 서도(西島)가 고개 들고 망을 보는 자세다.’

1977년 3월 7일 새벽 5시, 화가로서는 최초로 독도 땅을 밟은 일랑(一浪) 이종상(71) 화백은 답사기에 이렇게 적었다. 검푸른 새벽 물안개가 연보랏빛으로 바뀌는 해돋이의 장관과 물안개가 걷히면서 선명하게 드러난 독도의 실루엣은 당시 우리 시대 진경(眞景)을 그리고 싶어 전국의 섬을 주유하던 이 화백이 그토록 찾아 헤맨 그것이었다. 초행에 해돋이도 보고 섬에도 오른 이 운 좋은 화가는 그날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맞닥뜨린 독도의 해를 가슴에 품고 돌아왔다.

“그때는 그게 행운인지도, 제 삶을 바꿔놓을지도 몰랐어요. 그저 독도만 생각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강한 힘이 느껴졌어요.”

이후 이 화백은 신들린 사람처럼 화선지 위에 독도를 그려댔지만 벅찬 가슴이 후련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가슴만 터질 뿐, 독도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길이 없었다. 어이하랴, 발아래 흙이라도 발라봐야지. 그는 캔버스에 독도의 흙을 바른 뒤에야 비로소 재현되는 영기(靈氣)를 느꼈다고 한다. 이후 그가 그린 독도 그림은 무려 5백여 점에 이른다.

“독도는 볼 때마다 달라요. 천의 얼굴을 하고 있지요. 지난해 봤을 때 다르고, 계절마다 달라요. 자연을 빌려 축소해놓은 잘생긴 수반석(水盤石) 같다고나 할까. 자연의 오묘함과 신(神)의 조형미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창작물입니다.”

이 화백은 첫 독도 입도 이후 기회가 날 때마다 화가, 시인감들과 함께 독도행을 주선해 독도를 소재로 한 시와 그림들을 남기도록 독려했다. 광복 60주년을 맞은 2005년엔 화가 60명으로 구성된 독도지키기 ‘문화의병’을 조직하기도 했다.

이 화백은 “우리가 독도를 지키는 만큼 독도도 우리를 지켜준다. 한반도가 내 몸이라 생각하면 독도는 좌청룡이고, 강화도 참성단은 우백호, 백두산은 북의 현무, 한라산은 남의 주작이다. 그래서 우리는 독도를 지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은 국민이 다 알지만 마음속에 얼마나 신념으로, 정신으로 품고 있는지가 문제다. 진정 내 것이라면 사랑하고 가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영유권에 과잉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얼마나 그 섬을 사랑하고 있는지 보여주면 됩니다. 이런 연장선에서 우리 화가들은 무장하고 보초를 서거나, 주민등록을 옮기거나, 생태환경운동을 벌이는 대신 독도를 그리고 또 그릴 겁니다.”

■ 황선기 태극기선양운동중앙회회장
“훼손된 태극기 그냥 못 지나쳐”

황선기 태극기선양운동중앙회 회장은 태극기가 훼손되거나 잘못 게양되는 일이 없도록 ‘태극기 바로달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37년 동안 한결같이 태극기 사랑을 실천해온 (사)태극기선양운동중앙회 황선기(59) 회장은 태극기를 늘 지니고 다닌다. 훼손된 태극기가 게양돼 있으면 교체하기 위해서다. 그의 지극한 태극기 사랑은 1972년부터 시작됐다. 위아래가 뒤바뀐 채 걸려 있거나 야간에까지 게양된 태극기를 보며 ‘태극기 바로 달기’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

황 회장은 당시 자신이 다니던 목재회사에서부터 태극기 바로 달기 운동을 시작했다. 회사에 걸려 있는 더러운 태극기와 부서진 깃봉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비를 털어 마련한 새 태극기와 황금색 깃봉을 회사에 기증했다. 뿐만 아니라 관공서의 잘못 게양된 태극기까지 지적하기 시작했고, 그의 유별난 태극기 사랑을 오해한 공무원들의 신고로 경찰서에까지 불려가기도 했다.

경찰 조사에서 금세 풀려난 황 회장은 그 일을 계기로 경찰서 전 직원을 상대로 태극기 관련 강의도 했다. 태극기를 향한 그의 열정이 계속됐음은 물론이다. 그는 1982년 태극기 사용 1백 주년을 맞아 인천에서 개최된 국내 최초의 태극기 선양 전시회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후 1988년에 태극기선양운동중앙회를 창립, 초대 회장에 선출돼 현재까지 20년 가까이 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태극기 나눠주기, 태극기 관련 개선안을 정부에 건의하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태극기 바로 달기에 힘쓰고 있다.

태극기선양운동중앙회를 통해 그동안 수만 기의 태극기를 무료로 나눠준 황 회장은 “태극기게양에 소홀한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대형 아파트와 달리 빌라나 단독주택에는 국기꽂이가 없는 곳이 많아 태극기를 달기가 힘들다”며 “건물을 지을 때 국기꽂이를 의무적으로 만들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국기 게양을 활성화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증조할아버지에게서 1890년대 제작된 태극기를 물려받은 황 회장은 규격과 크기가 다른 30여 종의 태극기를 보관하고 있다. 그는 “태극기는 옛날 조상들과 오늘을 사는 후손들을 이어주는 정신적 상징과도 같은 존재”라며 “이렇게 고귀한 태극기를 온 국민이 사랑하고 바르게 게양할 때까지 태극기 바로 달기 운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태극기선양운동중앙회는 이를 위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태극기 그리기 대회도 개최할 계획이다.

<위클리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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