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으로 임용 시험에 합격, 장애인 특수학교 ‘서울 정인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김명옥 씨.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본 사람이 저일 걸요?”

지난 13일 장애인 특수학교인 서울 정인학교 교실에서 만난 김명옥(32) 교사의 첫 마디다. 그는 ‘선천성 망막 변성’으로 인해 시각장애를 겪고 있지만, 지금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엿한 선생님이 됐다.

“처음 교원 임용시험 볼 때는 점자가 익숙하지 않아 시간이 턱 없이 부족했어요. 문제를 다 풀기는커녕 찍을 시간조차 없더라고요.”

2007년까지 교원 임용 시험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험문제는 점자로만 제공됐다. 줄곧 비특수학교에서 듣기 방식에만 의존하다 뒤늦게 점자를 익힌 김 씨와 같은 시각장애인들은 점자를 속독하는 데 한계가 있어 점자 시험은 또 하나의 높은 문턱이었다.

김 씨는 다시 시험 준비를 시작했지만 ‘공부를 해도 과연 시험에 붙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 때문에 마음이 어수선했다. 실력을 떠나 ‘시험 방식’ 때문에 좌절을 맛 봐야 했던 셈이다.

인권위에 진정서 제출…음성서비스 지원·시험시간 연장

김 씨는 해결책을 찾아 동분서주하다 다른 시각장애인 32명과 함께 임용시험을 위한 장애인의 ‘정당한 편의’를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결과는 다행히 ‘해피 엔딩’이었다.

인권위 시정 권고를 받아들인 서울시교육청은 시각장애인 응시자에게 점자 대신 음성 서비스를 지원하고 시험 시간도 1.5배 늘렸다. 이 때 마련된 개선책을 통해 현재 김 씨를 포함한 3명의 시각장애인이 특수학교 교사가 됐다.

시각장애인인 임용고사 지원자들의 인권위 진정 제출은 처음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해당 교육청에 음성지원을 요청해도 ‘시각장애인이라면 점자를 능숙하게 읽을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장애인 간 차별 아니냐’는 이유로 번번이 거부당했다.

그러다 지난해 4월부터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이 김 씨와 다른 32명의 진정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체념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보이지 않는 장벽 앞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정당한 권리주장을 실현할 수 있는 통로이자 발판이 됐다.

“나는 행운아”…힘없는 장애인까지 배려하는 장애인법 됐으면

김 씨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했다.

차별에 대한 권리구제는 당연한 것 아니냐는 되물음에 김 씨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없었다면 올해 제가 선생님이 될 수 있었을까요? 당연한 권리주장이지만 제겐 현실적 ‘혜택’으로 돌아왔으니 행운일 수밖에요”라고 답했다.

김 씨는 이어 “궁극적으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필요 없는 사회가 가장 좋은 사회”이지만 “현실적으로 아직 법이 필요하다면 법이 잘 지켜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두 달도 채 안 된 새내기 선생님이지만,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미술과 율동 등을 가르치는 일에 재미와 보람을 느낀다는 김 씨.

교사라는 직업을 통해 장애인에 대해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김 씨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으니 이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장애인법을 넘어 스스로 권리주장조차 할 수 없는 장애인들까지 고려하는 품 넓은 권리 구제법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내성적이라며 처음 인터뷰를 망설이던 김 씨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보다 적극적인 실현을 기대하며 어느새 큰 목소리로 시원스레 웃고 있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주년
“시혜적 차별금지를 넘어 자기 권리 구현으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이 지난 11일로 시행 1주년을 맞았다.

인정숙 보건복지가족부 장애인권익증진과장은 “장애인복지법 등에 규정돼 있던 시혜적 차별 금지를 넘어 장애인 스스로 권리를 구제할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한 게 장애인차별금지법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전에는 장애인이 정보에의 접근이나 이동권·고용 등의 차별 시정을 요구해도 해당기관이나 사업주가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면서 차별을 당한 장애인은 국가인권위원회나 법무부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게 됐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후인 지난 2008년부터 장애 차별 관련 진정 접수는 1년 동안 695건으로 지난 2007년 대비 3배 가량 증가했다.

이 가운데 △전맹 시각장애인의 현금인출기에 음성안내 요청 △정신지체 3급 장애를 이유로 우체국보험 재해안심보험 만기 재가입 갱신 거부 사건 △뇌병변·지체장애를 이유로 박사과정 면접 탈락 사건 등 전체 62.6%가 권리를 구제받았다.

인 과장은 “이 법으로 인한 재정 소요 등의 사회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영역별 의무 시행을 1·2·3단계로 나눠 진행한다”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취지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세부적인 지침을 마련하고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인 과장은 또 “제도적인 것에 앞서 모두가 장애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생각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며 “결국 차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없어질 수 있도록 장애인 권익 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 홍보지원국>